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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일들이 만들어 준 완벽한 하루

by narara Mar 16. 2025

평소보다 빨리 눈이 떠져 일찌감치 출근길에 나섰다. 차가 회사에 있기도 했고 시간도 많아서 대로변의 가까운 길 대신 천변으로 빙 돌아가는 산책길을 택했다. 아직 쌀쌀한 아침기온이지만 빠른 속도로 걷다 보니 금세 땀이 나면서 모처럼 운동을 하는 듯한 뿌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 하루는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는 날로 만들기로 마음먹게 됐다. 이른 아침 걷기처럼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의욕을 채워주는 행위가 또 있을까?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그동안 바쁜 일들 때문에 미뤄놓았던 자료정리를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자료를 단계별로 폴더에 정리하고 부족한 자료를 찾아 추가했다. 사업성 분석용 엑셀을 보다 용이하게  수 있도록 조건을 표준화하는 일도 처리했다. 퇴근 후에는 부리나케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고 자동세차기계로 세차를 했다. 부끄럽지만 폭우에 차를 내놓는 자연세차 말고 세차를 한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마트로 향해 욕실하수구 세정제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샤워실과 세면대에 뿌려놓고 이불빨래를 돌린 후에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전부터 먹고 싶었던 곱창 쌀국수를 먹기 위해서였다. 8시쯤 되니 피크타임이 지나서인지 웨이팅도 없었고 혼자서도 눈치 안 보고 4인자리에서 먹을 수 있었다. 맛도 진하고 칼칼한 것이 입맛에 딱이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이불을 건조기에 돌려놓고 욕실 청소를 마무리했다. 최근 샤워를 하고 나면 과장 조금 보태 복숭아뼈까지 차오르던 물이 콸콸 빠져나가는 것을 보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건조기에서 꺼낸 보송한 이불까지 침대에 세팅하고 보니  든든하게 차오르는 따뜻한 행복감.


미루고 있던 작은 일 여러 개를 하루동안 처리하고 보니 내 일상이 한결 단정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오는 수차례의 작은 만족감을 합쳐보니 그 총량이 몇 주간 준비했던 프로젝트 하나를 완성했을 때 오는 강렬한 성취감보다 오히려 더 크고 더 단단하다.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 있고 또 되풀이하고 싶은 완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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