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사실은 대상포진이 올 정도로 고생한 남편의 희생과 독박 육아를 짊어진 나의 노고가 있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다른 나라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당연히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야 했다. 리스트의 첫 번째 항목은 나로서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바로 "보라색으로 염색하기"였다. 그냥 보라끼 살짝 도는 정도 말고 K-pop 가수들이나 하는 진짜 보라보라 한 색 말이다. 올해가 지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 지루한 머리색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니 더 늙기 전에 보라색으로 염색을 해봐야 했다. 출국 예정 일요일 직전 금요일까지 출근을 했으므로 염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출국 하루 전 토요일뿐이었다. 염색으로 유명한 헤어디자이너를 찾아 가로수길로 향했다. 이런 식의 센 머리를 하는 것은 거의 20년 만이다. 20년 전, 귀밑머리 3cm의 통제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머리를 노랗게 탈색한 것이었다. 그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싸게 하는 미용실을 찾아간 것이니 싸구려 약을 썼을 테고 두피가 엄청 쓰라렸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데 이번에도 만만치 않았다. 보라색을 입히기 위해서는 먼저 머리를 밝은 색으로 탈색해야 하는데 탈색이라는 과정이 머리카락의 색깔을 빼는 것이니 좋은 약이 있을 수 없는 것인지 그렇게 싼 미용실이 아님에도 두피를 강타하는 쓰라림은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종국에는 왼쪽 헤어라인 부위 두피가 까져서 조그만 상처까지 나게 될 정도였다. 유혈사태까지 불러온 탈색이 끝나고 나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무척 생경했다. 불현듯 20년 전 거울을 바라보던 노란 머리 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게 변한 거 같다라고나 할까.
이제 노란 머리에 보라색을 입힐 차례였다. 헤어디자이너가 보여준 샘플이 머릿속에 그리던 색은 아니었으나 약간 바랜 듯한 애쉬 컬러가 유행이라 하여 헤어디자이너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실망!
기껏 노란색으로 탈색을 해 놓고 애매한 보라색을 입혀 놓았더니 내일 당장 회사에 가도 무방한 잔잔한 보라색이 나왔다. 다시 탈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음날이 바로 출국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후퇴했다.
그리고 출국 후, 햇살 강렬한 칸쿤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열흘 정도 보내자 머리는 다시 염색 전 탈색 비슷한 수준의 머리로 돌아왔다. 두 번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 켄터키 집에 돌아가자마자 마트에서 탈색약 2통, 염색약 2통을 샀다. 기술이 없으니 양으로 승부해야 했다. 유튜브에서 셀프 탈색과 염색을 찾아서 독학한 후 직접 시술을 감행!
약으로 머리를 감는 수준의 주먹구구식 염색을 겨우겨우 끝냈다.결과는 대성공!
40살(미국나이로) 먹은 내 얼굴에 잘 어울리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보라색 머리는 나 올 한 해 내가 뜻한 대로 살아 볼 테다 하는 선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과한 탈색과 염색으로 머리카락의 영양분이 다 파괴된 덕분인지 머리를 며칠 안 감아도 기름기 없이 보송한 상태가 유지되는 점도 좋았다.
또 하나 좋은 점. 이 동네에 이런 머리색을 하는 사람이 잘 없어서인지 어딜 가도 "I love your hair!" 하며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관종은 아니지만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며 경계의 벽을 조금은 낮출 수 있으니 이국땅에서 이 또한 큰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