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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여름날을 그리며

by narara

글은 인생을 오롯이 담는다. 내 인생과 상관없이 멋지고 그럴싸한 글을 쓸 수 있는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없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에는 내 인생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한 달간 내 인생을 온전히 사로잡아 버린 것은 지긋지긋한 아토피뿐이었으니 글을 쓸만한 소재도 또 별다른 의지도 생기지 않아 한 달 동안 아무 글도 쓰지 못했다.


브런치 글쓰기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시련들 속에서 내 의지 하나로 해 나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몹시도 나를 괴롭히는 아토피를 빼고는 쓸 이야기가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 글이 투병기나 불평을 쏟아내는 일기처럼 되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지만 내 인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아토피라면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소재이므로 지루하거나 읽을 가치가 없을지언정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가장 큰 의미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렇게 쓴다.


스테로이드를 일주일 정도 먹고 2~3주 정도는 약을 안 먹고 버티다가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면 약을 먹는 패턴으로 한 3개월을 지내왔는데 6월 중순경부터는 진물이 너무 심해져서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몸에 거즈를 붙이는 시간 동안 이미 진이 빠져버리는 지경까지 몸 상태가 악화되어 버렸다. 특히 손등 염증이 심해서 거즈를 붙인 후에 손등까지 내려오는 셔츠를 입고 다니다 보니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있을 때는 그나마 견디겠는데 출장이라도 있는 날에는 손등이 드러날까 계속 신경 써야 하고 더위까지 겹쳐져서 괴로움이 말도 못 한다.


지난 금요일 새로 찾아간 피부과에서는 평소 먹었던 양의 두 배 용량으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염증은 가라앉고 있다. 문제는 스테로이드를 계속 늘릴 수는 없기 때문에 보다 지속가능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면역억제재를 시도해 보자고 하는데 이 또한 과항진된 몸의 면역반응을 강제로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끈한 피부 따위 바라지도 않는다. 흉터투성이일지라도 염증만 없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해 바닷가에서 예전처럼 위아래 시원하게 내놓고 물놀이하다 조개도 좀 캐다 책 몇 장 읽고는 살짝 졸기도 하는 그런 보통의 여름날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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