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작년에 선재 업고 튀어라는 예쁜 드라마가 큰 즐거움을 줬었는데 태초에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었더랬다. TV를 틀다 드라마 채널에서 다시 방송 중인 커피프린스를 발견했다. 누가 봐도 여자였던 고은찬을 남자로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에 빠졌던 커피집 사장 공유가 사실은 고은찬이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하다가 결국은 네가 여자여서 좋다는 명대사를 날리는 12회가 방송 중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윤은혜가 남자인 척하면서 공유와 썸을 타는 스토리에 있기 때문에 12회를 기점으로 사랑이 이루어지고 나면 재미가 조금 떨어진다. 사랑이든 뭐든 시작하기 직전이 제일 신나는 법이니까. 어쨌든 오랜만에 본 커피프린스 속 윤은혜는 여름처럼 너무나 풋풋하고 공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너무나 청량하며 지금은 세상에 없는 배우가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것도 두 명이나.
이 드라마가 18년이나 됐다는 사실은 검색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18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인생도 그들의 인생도 한바탕 크게 휩쓸고도 남을 엄청난 시간이었다. 누구는 여전히 잘 나가고 누구는 떠나갔고 누구는 그래도 살아남았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한 명뿐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뛰면 모두가 자기 삶에서 1등이 될 수 있다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며 얼마 전 회사를 떠난 동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입사 20년 차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럭저럭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다른 방향을 향해 뛰어가야 하는 것인지 나에게 아직 뛸 힘이 있는 것인지 괜히 싱숭생숭해지는 밤이다. 그래도 여전히 풋풋하고 청량한 모습으로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꽁냥꽁냥 하는 고은찬과 사장님을 보니 위로가 된다. 다 변하고 다 떠나도 고은찬과 사장님은 거기 그대로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