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마당 딸린 집이 로망이었다. 그러다 나의 게으름과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여 테라스 딸린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됐고 비교적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최근 몇 주 동안은 폭염 때문에 화초에 물 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나가지 않고 있지만 날이 좋을 때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등기상 테라스 절반의 소유권을 보유한 채 나와 함께 열심히 대출을 상환 중인 고마운 남자와 아무것도 소유한 게 없으면서도 모든 게 다 자기 것인 뻔뻔한 남자는 고기 구울 때 빼고는 날이 좋든 나쁘든 테라스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보내는 시간으로 따지자면 테라스의 주인은 나도 우리 집 남자들도 아니고 우리 집 고양이가 맞다. 고양이치고 믿을 수 없이 둔한 몸짓으로 벌레도 잡고 실내에서 들을 수 없는 새소리를 들으며 체터링이라고 하는 앵앵거리는 소리를 냈다가 졸리면 테이블 그늘 아래에서 낮잠까지 늘어지게 자면서 해가 질 때까지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 집 고양이야 말로 테라스의 진정한 주인이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테라스 주인 노릇을 좀 해볼 작정이다. 화로대에다 불판 올려서 목살도 구워 먹고 버너에다가는 솥뚜껑 불판 올려서 백순대도 달달 볶아먹으면서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이볼 한잔 쫙! 어째 다 먹는 생각뿐이지만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니 그걸로 됐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