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이 글은 시작됐다.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 되든 그저 개인적인 소회 수준의 글로 끝나든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글이 지금 이 시작으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시작을 하면 어디로든 한 발짝이라도 가게 되어있다.
마흔이라는 중년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나에게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시작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내가 수많은 시작을 하면서 애초에 목적지로 삼았던 곳에 정확히 도달한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두 번째 단원 정도까지만 사람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영면에 든 문제집들, 삼 년째 별 차도 없이 지속되고 있는 다이어트처럼 중간도 못가 흐지부지되거나 끝끝내 목적지에 닿지 못한 시작이 부지기수다.그렇다고 그런 시작이 무의미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자격증은 못 땄어도 한 줌의 지식과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겼으며,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도 나온 자기주장 강한 나의 몸이, 적어도 더 나오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벌써 15년도 더 된 기억이 하나 있다. 대학 졸업을 하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지 못한 채 수수한 이력서를 여기저기 내고 다니며 씁쓸한 탈락의 고배를 연거푸 마시던 중이었다. 과 선배와 안국역 던킨도너츠에 앉아서 통유리 밖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취직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행정고시를 준비 중이던 선배는 화려한 이력서가 없다면 자기처럼 고시 준비를 하거나 공기업 시험 준비를 해보는 게 어떠냐며 조언했다. 선배가 하는 공부량을 보니 고시는 자신이 없었고, 공기업에도 왠지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공기업 시험이라고 붙을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공기업이라니. 선배도 알다시피 나 자유로운 영혼이잖아."
"그럼 관광공사는 어때? 여행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고, 집에서도 가깝잖아."
그래. 관광공사라면 얘기가 달랐다.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니 아무리 공기업이라고 해도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관광공사라는 새로운 목적지를 설정하고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토익점수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아 일본어 자격증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얼마 후, 관광공사에서 입사 공고가 났고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을통과한 후 무사히 최종면접까지 가게 됐다. 영어면접과 사전에 준비해 간 프레젠테이션을 좋은 분위기에서 잘 마쳤기에 나름 기대를 품은 채 초조한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기대와 소망이 큰 만큼 실망도 컸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일단 다른 공기업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입사시험 경험이 추후 관광공사에 다시 지원했을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도전한 다른 공기업에 나는 결국 합격했고, 관광공사에 합격할 때까지만 다니자고 시작했던 그곳에15년째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남편도 만났고, 그 남편과 아들도 낳았으며, 현재는 휴직을 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 켄터키, 치킨 먹을 때 말고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았던 곳에서 잠시 살고 있다.
시작은 우리를 늘 다른 곳으로 이끈다. 지금 이곳 말고 다른 어떤 곳. 내가 계획한 정확한 목적지로 이끌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그 시작이 이끈 곳에서 또 다른 시작이 꼬리를 물고 새로운 여행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러니 시작이야말로 얼마나 설레고 반가운 일인가.
마흔이 되고 보니, 소소한 시작들에 마음이 끌린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요즘, 나는 집 밖에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곳에 테이블도 가져다 놓고 맨살을 드러내고 있던 공터에 야생화 꽃씨도 뿌렸다. 볕 좋은 날, 야외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야생화 싹이 보송보송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면 저 아이들이 어떤 꽃을 피워낼까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 오르곤 한다. 한쪽 귀퉁이에 꽂아 놓은 대파는 쑥쑥 잘 자라는 게 하도 기특해서 '파순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조만간 화분도 몇 개 더 들여놓고, 바람이 불면 호로롱 호로롱 청량한 소리를 내는 풍경도 매달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