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아라풀 Jan 21. 2016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상처입은 가리왕산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문정희님 시> 겨울사랑


지난 12월,

일년 내내 곁에 두었던 달력을 정리하다 한 해가 끝나고 난 후에야 우연히 넘겨본 이 시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너무 많은 무심함 탓에 뒤늦게 발견한 이 12월의 지나간 달력처럼 그리움의 끝에 걸린 이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껏 닫고 지냈던 내 모든 마음들이 해제된 느낌이었다.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담겨져 있는지...

눈을 볼 때마다 떠올랐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왔다.


내 그리움의 원천은 아마도 눈이려나?


전날까지도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다 저녁 무렵에서야 가리왕산을 택했다. 무작정 떠나기엔 부담스러운 겨울 산이지만 가야겠다는 마음이 더 먼저였다.

퇴근 길에 사 둔 김밥 한 줄과 새벽부터 일어나 걸을 나를 위한 따뜻한 물과 귤 몇 개를 쑤셔 놓고 터미널로 향했다.

오로지 눈을 보고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유독 눈이 내리지 않는 올 겨울.

그래서 더욱 간절했었나?

진부터미널에서 장구목이를 향하는 버스를 타고 홀로 길을 나섰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 중턱에 이르러서야 겨우 눈을 마주했다.

희미한 것들이 위로 오를수록 더해졌지만 마음은 뭔가 무거워졌다.

인간에 의해 무참하게 버림받은 숲을 발견하는 일은 너무나 잔인했다.

정상에서의 찬바람을 느낄 겨를도 없이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내어 걸을 때의 공포감을 숲은 이해해줄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인 우리가 이 숲에 저지른 죄값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함께 밀려와 홀로인 적막감이 더해져 미친듯이 사람에게로 달려 내려왔다. 고요함 속에서 나를 찾으려 떠난 여행은 결국 사람곁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그리운 것이며 또 공포스러운 짐이기도 했다.

무너져버린 가리왕산 숲 속의 공사 굉음은 진저리나는 내 욕망이 발가벗겨지는 순간의 발견이었고

아니길 바라면서도 눈송이처럼 내게 머물다 떠나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발견해야하는 시린 시간이었다.

홀로 감당해야하는 이 모든 것들이 속절없이 두려웠던 산길이었다.

나와 이 숲에게 소용없는 용서를 구한다.

따스한 겨울은 결코 너에게 닿을 수 없음을...



작가의 이전글 홀로 걷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