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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이

바위꾼, 양석봉

by 날아라풀

산이 삶의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

빵만 해결된다면 산악인이 되고 싶었다는 형님.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바위를 잠시 떠났던 형님이 환갑을 맞아 등산학교를 가면서 다시 바위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 인연으로 등산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된 석봉 형님.

모두가 산악회 큰 형님이랑 부르는 산을 닮은 어른.

당신의 이름처럼 오로지 바위만을 탐했던 산사나이.

암벽등반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독도법 하나를 배우겠다고 등산학교에 들어간 나에게 형님은 그 모습이 너무 순진해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바위를 알게 되고 얼떨결에 바위를 계속하고 있는 내게 형님은 별다른 말을 일체 건네지 않았다.

함부로 누군가를 폄훼하거나 섣부른 조언을 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딱 한번 산악회에서는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말씀하신 게 전부다.

그 말씀 여전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못난 후배에게 이럴 다할 타박 또한 섣불리 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바위를 오를 뿐.

등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번뜩이는 눈빛이 형님의 바위를 향한 마음이 어느 정도 깊은지 느껴진다.

젊은 날의 형님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숨은 고수였으리라.

예전에 태범이와 함께 바위를 오르면 못 오를 바위가 없었단다.

옛 등반이야기를 할 때마다 대단했을 젊은 날의 형님을 상상하게 만든다.

만나기만 하면 노부부 같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태범형님과의 자잘한 이야기보따리가 언제나 재미나다.


그런 큰 산 같은 형님이 요즘은 산을 오를 때마다 종종 귀여운(?) 투정을 부린다.

'아이고 이제 더는 못하겠다. 너네들끼리 가'

말로는 주저앉으면서 어느새 길을 걷고 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러면서도 '오늘은 등반이 좀 되네' 라며 웃고 있다.

더는 안 하겠다는 바위를 함께 오르는 날은 그래서 설레기까지 하다.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된다는 것은 때로 큰 부담이겠지만

그저 모르는 척해서라도 오래 같이 하고 싶은 욕심을 고백해 본다.

형님의 투정을 산에서 더 자주 듣고 싶다.

아마도 후배들 모두 같은 마음이리라.


내게 큰 산인 형님이 얼마 전 새롭게 도전한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나이 먹을수록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며 지난 3월에 시작한 둘레길 걷기.

그 대장정 156.5Km를 5월 말에 무사히 완주했다.

형님의 강력한 요청으로 마음껏 축하하고 싶은 마음을 다들 누르고 청맥인 몇몇만 우이동으로 향했다.

느지막이 우이령을 걷고 온 유진, 오영형님과 바쁜 시간을 쪼개 축하하러 달려온 진석형님.

석봉 형님을 기다리며 걸은 우이령

이른 아침 인수봉을 오르는 산악회 식구들 모두 한마음 되어 형님의 완주를 축하했다.

쑥스러운 듯 유진이가 건넨 꽃다발을 받으며 활짝 웃는 모습이 친근하다.

마음속으로 엄지척을 몇 번이나 외쳤다.

요즘 형님이 개발하고 있는 등반장비를 보며 형님의 산사랑을 실감한다.

산꾼. 그 이름 양. 석. 봉.

젊은 시절부터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오십여 년의 세월 동안 바위처럼 그 많은 부침을 묵묵히 견뎌내고

점점 더 단단한 바위를 닮아가는 산꾼.

양. 석. 봉.

형님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오래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언제나 건강했으면 좋겠다.

바위처럼.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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