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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Nov 30. 2016

자연과의 대화

비우는 길

왜 산에 오르는가?

가끔 이런 답도 없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보곤 한다.

외국의 어느 유명한 산악인처럼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누구나 수긍할 만한 명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납득할만한 꺼리가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손꼽을만한 이유를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고향 산천에서 나고 자라 산에 대한 이질감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유난히 내게 설렘을 주는 것은 흰 산이었다.

눈 구경이 귀한 남쪽이라서 그랬을까?

아주 오래전 달력에서만 보던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산에서부터 다큐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산악인들의 험난한 고산까지 이상하게 설산은 내게 묘한 두근거림을 주었다.

그래서 산에 들었을까?

언젠가부터 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삼각, 설악, 지리...

그렇게 가끔 혼자만의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은 내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언제나 그 깊이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암벽등반에서부터 순하디 순한 고운 흙길 혹은 너덜길을 만나다 보니

욕심이 커졌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래. 나 홀로 EBC까지만이라도 가보자.'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길을 찾다 보니 조금 더 높은 흰 산에서 '민낯의 나'를 마주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암벽 등반을 할 때마다 바위에 한 발을 올리고 나면 커지는 두려움만큼이나 설산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 일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잠깐일 뿐 공포가 커지다 보니 포기할까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겨났다.

혼자 힘으로 높은 흰 산을 오르려면 이런 사소한 내 안의 두려움 따위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니 쪽팔리게 여기서 그만두지는 말자 다짐했다.


그렇게 2년여 바위를 시작하고 난 후 우연히 그녀와 마주했다.

'산악인 오은선'

TV에서만 보던 그녀가 내 옆에 있는 것이다.

두어 번 스치듯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힐끔거리며 곁눈질로 그분의 등반 모습을 지켜보다 함께 운동하는 언니의 지인이라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쭈뼛거리던 망설임이 아는 언니의 언니라고 듣는 순간부터 단박 친근함이 들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불쑥 이 말부터 튀어나왔다.

여느 산서를 읽어도 도무지 이 궁금함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썰을 곁들어 가며... 다가가자 한눈에 봐도 '대체 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낯빛이 자못 진지했다.

"그 날일 때는 고산에서 등반을 어떻게 하나요?"

그러다 그녀는 '무슨 이런 질문'을 하는 표정으로 슬며시 웃었다.

수차례 고산을 오른 그녀에게 고작 생리 현상에 대해 물어봤으니 아마도 그런 원초적인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나는 정말이지 해결되지 못한 숙제처럼 산에서의 생활 중 이게 가장 궁금했다.

영하 몇십 도나 되는 그곳에서 맨 살을 드러내는 순간 동상일 테니 대체 어떻게 해결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 다음에 등반기를 쓰면 꼭 생활을 담으리라는 다짐을 하며 망설임없이 물어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한 질문이었는데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게 대답했다.

"그 날과 겹치게 등반일을 잡지 않죠. 어떻게 잡은 일정인데..."


'아뿔싸, 그렇겠구나. 난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그래도 등반을 하면 몸이 힘들어져 두 번씩 할 때도 있긴 하죠."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오르지 않아요. 베이스캠프에 머물죠."

갑자기 머리에서 띵 소리가 났다.

잠시 후 그녀는 말을 이었다.


'산을 오를 때는 절대 욕심을 내선 안된다고. 욕심을 내는 순간 삶과 죽음이 갈린다고. 자신은 산을 오를 때마다 자연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오른다'라고...


그렇게 산악인 오은선은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건넸다.

그녀는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자신의 온 경험을 담아 기꺼이 답을 해줬다.

결코 비웃거나 오만하지 않았으며 느리게 산을 오르듯 말을 했다.


나는 아닌 척하며 흰 산을...

그것도 엄청난 높이의 산들을 그 날을 신경 쓰면서까지 오르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채우는 것이 아닌 비워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먼저 그 길을 걸었던 그녀는 지긋이 알려주었다.


그녀에게 산은 어떤 의미였을지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볼 뿐이지만 적어도 저 순간 내 앞에 있었던 산악인으로서의 그녀는 참 아름다웠다.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느날 문득 나도 그녀와 닮은 느낌으로 대화하듯 그 산을 걸었으면 좋겠다.

이 또한 욕심이겠지만...

그런 날을 꿈꾸어본다.

'자연과의 대화'라는 귀한 말을 들을 수 있었던 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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