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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Mar 01. 2022

힘룽 히말 가는 길 11

다 죽었어.

착착착착.

혜정이의 확신에 찬 아이젠 웍이 골짜기를 울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내딛는 나의 디딤 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내 느린 동작이 거듭되자 보다 못한 대장님이 거침없이 빙벽을 오르며 밀착 지도를 해주신다.

안정장치가 없이도 이 벽을 저렇게 오를 수 있구나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겁먹지 마세요. 겁을 먹어서 그래요."

대장님의 단호한 목소리가 나를 붙든다.

'그게 내 마음대로 안돼요.'

대답할 틈도 없이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어 아무 생각이 없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많아 마음은 급한데 모르는 것 투성인 나 같은 대원을 만났으니 오죽 답답할까?

답답하면 머리를 긁적이는 대장님의 버릇이 급기야 또 나온다.

잘하고 싶은데 이 놈의 겁이라니.

뒤이어 올라오는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대장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명성산에 퍼지는 대장님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내게 다시 꽂힌다.

방금 지나온 얼음길이 그들에게 평지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을 향해 걷는다.

누군가는 떨리는 마음으로 디디고 어떤 이는 거침없이 오르는 얼음판에 눈보라가 인다.

헉헉거리며 정신없이 올라오는 나에게 건네는 한 마디.

"힘룽 히말 정상인 줄 알았네."

계곡 사이로 눈바람이 스치는 모습을 보며 정균일 이사님이 정상이라고 농을 던진다.

그 여유로움에 마음으로 웃고 있는데 웃어보라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밀고는 여유로운 농담을 하신다.

어색한 카메라를 뒤로하고 이사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씨익 웃는다.

언제나 여유 있는 모습의 정균일 이사님

비상 상황.

대장님이 던져준 오늘 훈련에 던져준 미션이었다.

히말라야에서 기상 악화와 같은 비상 상황이 닥쳐 탈출한다고 가정하고 훈련하라는 요구였는데 어버버 거리느라 결국 탈출하지 못했다.

너무 느린 진행 탓에 지켜보던 대장님이 "다 죽었어."라고 외쳤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우린 다 죽었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한 번씩 바람이 불어와 눈보라 칠 때야 겨우 대장님의 말씀이 실감이 날뿐 아직까지 힘룽 히말이 나와는 먼 거리에 있음을 느낀다.

여기저기 빙벽에 몸을 부딪힐 때마다 다 죽었다고 외치던 대장님의 목소리가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벽을 느끼다.

안자일렌, 퀵드로우 매듭 통과하기, 빙벽 걷기...

목숨으로 이어지는 이 모든 행위들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면 안 된다는 것과 시간이 꼭 생명임을 알아 절대적으로 집중할 것. 그 안에 나와 동료의 안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

오르는 일과 떨어지는 일이 그리 멀지 않음을 알려주는 오늘 이 훈련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눈으로 훈련을 지켜보는 대장님과 이사님들의 눈빛이 확신해 차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목숨줄로 하나 되어가는 우리들의 시간

모두 다 함께 힘룽 히말에서 온전히 돌아오는 그날을 위해 훈련하는 우리들에게 "다 죽었어"라며 말하던 대장님께서 감히 주제넘는지는 몰라도 "여러분은 자신의 자산"이라고 또 다른 격려의 말을 던진다.

비록 내게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 수 없으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모인 이곳에서 대원 누구 하나라도 어디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훈련을 마쳐야겠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 잘려 욕을 수없이 먹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대장님과 강신원 이사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애써 시간을 내어 우리와 함께 훈련에 참여해주는 사람들을 절대 욕먹을 일이 없도록 더욱 집중해야겠다.

죽음과 욕을 이야기하던 그들의 눈빛에 담긴 애절한 당부가 와닿는 하루였다.

모두 다 온전하게 살아서 오리라.

"다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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