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을까?

불곡산, 악어의 꿈길릿지

by 날아라풀

바람은 계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골을 따라 올라와서는 흔들리는 나뭇잎 끝을 설핏 흘끗거리자마자 이끌리듯 내게 다가왔다. 딱히 그럴 이유도 없었건만 바람에게 내 안의 불안을 들킨 것 같아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길을 잘못 들어 6, 7 피치 들머리까지 걸어 올랐다가 선등자가 줄을 깔고 기다리고 있는 1 피치로 서둘러 되돌아갔다.

조금만 주위를 기울여보면 찾았을 초입을 1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들어섰으니 주린 배에서 꼬륵 아우성을 쳤다.

종종 길을 잘못 들 때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라고 속으로 되뇌는 순간이 잦았으나 이 날은 문득 한 번쯤 고개를 갸웃거릴 때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도 피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여러 번 있었으나 '설마 이게 그거겠어.'라며 스윽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홀로 헤매는 길은 돌아가도 괜찮아를 되뇌어도 조바심이 적은데 비해 여럿이 걷는 길은 때로 서로를 배려하느라 감정을 감추는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으리라.

들키기 싫은 불안처럼 두려움도 길을 잃고 헤매어 내 곁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시작되는 등반...

1 피치부터 난이도가 높다.

내 짧은 다리와 실력으로는 어찌 디뎌 보기도 힘든 코스다. 사람들의 지탱으로 겨우 올라선다.

선등연습을 하느라 두려움에 떨며 올랐던 2 피치, 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확보자의 눈빛이 애처롭다. 순간 흔들리는 내 마음을 바람이 눈치채고 다가온다. 그리 높지 않은 벼랑인데도 불안이 스며들었다.

어렵사리 한 고비를 넘기면 다시 힘이 들어가는 등반 코스들.

설치된 슬링을 모두 사용하며 올랐던 고난의 3 피치,

드디어 느껴본 악어의 날등-악어바위 4 피치, 헉헉거리기에 바빴던 5 피치와 트롤리안 브리지까지 숨차게 올랐다.


빌레이와 슬링의 힘으로만 오른 6, 7 피치까지...

악어는 꿈꾸기도 전에 지쳐서 잠들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저질 체력과 정신력이 졌던 날로 기억된다.


오래전 반복되는 꿈은 항상 바위 산이 나왔다.

그 거대함은 내 고향 산이기도 했고 때론 이름 모를 산들이기도 했는데 한결같이 그 꿈을 꾸고 나면 뭔가 행복했던 느낌과는 다르게 등반은 뭔가 고됨이 분명하다.

심지어 어렵고 불안하기까지 하니 기쁨과 맞먹는 어디까지 내가 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불확신이 나를 자꾸 머뭇거리게 한다.


꿈속의 좋은 기억들이 현실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때는 부디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제발 꿈에서 끝나지 말았으면 정말 좋겠다고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