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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Jan 26. 2021

3. 돈벌이

내가 번 돈도 내 돈, 네가 번 돈도 내 돈

매달 따박따박, 공과금


  결혼 후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한 날보다 안 한 날이 훨씬 많다.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우연한 기회에 일을 시작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둘째가 생겨 만삭 무렵 일을 그만두었다가 둘째 백일 즈음 아는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고 1년간 다시 일을 했다. 뭘 잘못한 건지 애기 엄마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재계약에 실패하고 코로나 19가 일상을 덮치고 다시 전업주부가 되었다.      


  나는 돈 버는 데에는 재주도 흥미도 없다. ‘넉넉’은커녕 쪼들리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생활력은 내게 생기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하고 다녔고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딱 나 혼자 쓰고 털어버릴 만큼씩만 벌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고 꿀이 흐르는 회사에서 매월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돈 모으는 재주도 없었다. 월급이 쥐꼬리만 해서 그랬다고 치자. 그래도 명절이나 연말이면 엄마한테 봉투에 목돈도 넣어드리는 정도의 효도는 했다. 역시 돈으로 하는 효도가 제일 쉽고 효과가 좋았다.


  일을 할 때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돈 벌려고 나가는 게 아니야. 나중에 애들이 커서 내 손길이 덜 필요해졌을 때, 다시 내가 사회에 나가고 싶을 때 그때를 위해서 아주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이어놓으려는 것뿐이야.”     


  진심이었다. 파트타임으로 하는 일이라 수입도 일정치 않았고, 근무시간은 애 놔두고 나가서 바람 쏘이는 기분으로 다녀오기 딱 좋은 정도였다. 더 열심히 해서 뭔가를 더 성취해 내고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어쩌고 저쩌고의 계획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잘렸나 보다. 아무튼. 고맙게도 남편은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돈 버는 것에 큰 관심이 없고, 재주는 더더욱 없는 사람으로 바라봐주고, 나가서 뭐라도 하고 오면 그저 기특해한다. 참 고맙다. 시어머니도 내가 나가서 돈을 벌면 더 좋겠지만 집에서 벌어오는 돈을 잘 관리하고 모으는 것도 능력이라 하시며 큰 푸시는 안 하신다. 감사하다.      


  적은 돈이라도 직접 벌면 좋은 점도 있다. 아빠한테 목욕탕 정기권을 끊어준다든지, 겨울맞이로 외투를 사준다든지, 고모들이랑 놀러 간다고 하면 용돈을 준다든지, 아이들 옷을 좀 쉽게 고른다든지, 나도 나가야 되니까 옷을 산다든지, 남편에게 신발을 하나 사준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내 욕구가 이끄는 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라고 해서 내 욕구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번 돈도 내 돈, 네가 번 돈도 내 돈이니까 그냥 다 내 마음대로 쓰면서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약간, 아주 약간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이번 달 살림살이의 눈치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참 용하게 이러면서도 ‘아.. 돈 벌어야 하나..’하는 생각은 안 든다. 대신 일요일에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독새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죽으면 영원히 쉴 수 있어.”     



3-1. 마흔의 귀여움

김치 냉장고가 뭐라고.     


  며칠 전 친한 친구가 드디어 김치냉장고를 질렀다며 아침부터 신나는 소식을 전했다. 친구는 본인이 참 독립적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결정은 혼자 못 내리고 있다며 남편이 보기에 너무 간절해 보였는지 사러 가자고 해서 바로 가서 질렀다고 했다. 친구도 코로나 19로 잠시 일을 쉬고 있어서 내가 우스갯소리로 돈 낼 사람과 함께 결정해야지 하고 얘기했다. 돈을 벌고 있을 때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덥석 사들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10년을 미뤘을 테다. 이제 진짜 살 때가 되었기에 이루어진 고민이었겠지.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친구를 떠올리니 좀 귀여운 것 같다. 그 친구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립적인’ 사람이라 남편이 혼자 번 돈이라고 해서 눈치 보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하고 내내 별러 왔을 그 김치냉장고를 생각하며 이거 살까 저거 살까, 지금 살까 더 있다 살까를 고민하는 모습, 남편이 사러 가자고 말했을 때 신나 하는 모습, 상가에 가서 영업사원의 설명을 들으며 오늘 나는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러 온 사람이야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설렘과 알 수 없는 당당함, 이걸로 할게요 라고 말할 때의 벅찬 표정이 그려지며 나이 마흔에 참 귀엽구나 싶다. 귀여운 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옥아, 니가 번 돈도 니 돈, 선배가 번 돈도 니 돈이니까, 눈치같은 거 보지마."


왠지 친구가 대답할 것 같다.


"그런거 안 보는데"


여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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