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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Jan 29. 2021

4. 가족탕

목욕탕에 누구랑 가나요?

엄마, 우리 여기서 살면 안되?


  난생처음 가본 가족탕. 역시 아이들에게 물놀이는 정답이다. 남편이랑 나는 뜨끈한 물에 몸을 한번 푹 담그고는 애들 더울까 봐 시원한 물을 받아 미지근하게 만들어 자리를 내어줬다. 물개 같은 1호와 그에 뒤지지 않는 2호. 2시간이 아주 순식간에 지나갔다. 욕조보다 큰 탕이 마음에 들었는지 1호는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한다.      


  나의 오랜 목욕탕 메이트는 엄마였다. 다 커서도 꼭 엄마랑 목욕을 갔다. 울산서 직장 다닐 때도 주말에 집에 오면 엄마랑 목욕을 갔다. 어릴 땐 엄마만 나를 씻겨줬지만 크고는 서로의 등을 밀어줬다. 엄마 등 밀어주기가 귀찮아 때론 게으름을 부리기도 했다. "엄마, 오늘은 때 없는데." 하면서 말이다. 엄마는 내가 손이 닿는 곳도 구석구석 밀어줬다. 내가 해도 되는데 내 몸 여기저기 밀고 있는 엄마한테 그냥 놔두라며 몸을 비틀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여기저기 내 몸을 씻어주던 엄마의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엄마는 한더위가 오기 직전에 쓰러졌다. 이미 암이 진행이 많이 된 상태라 급히 수술을 했고 회복되는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지냈다. 엄마의 마지막 여름을 그렇게 병원에서 보냈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이어지고 엄마는 만신이 아프다고, 뜨끈한 물에 푹 담그면 좋겠다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걱정에 목욕탕에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찬바람이 불고 집에서 하는 목욕이 힘들어지자 목욕탕을 가끔씩 갔다. 엄마랑 마지막으로 갔던 목욕은 이듬해 봄, 3월 8일쯤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엄마는 온 만신이 아프다고 했다. 암이 재발하고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엄마는 힘이 들었는지 물에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 바닥에 수건을 깔고 누워있었다. 나는 엄마 몸에 따뜻한 물을 끼얹어 가며 구석구석 씻겼다. 마치 나 어릴 적에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늘어져 있는 어른 한 사람 씻기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집에 오는 길에 우스갯소리로 엄마한테


"너무 빡세다! 다음번에는 아빠랑 같이 가라." 


하고 말했다. 다시 엄마랑 목욕탕에 못 갔다. 마음 편히 목욕탕에 같이 갈 사람이 없어 한동안 목욕탕을 잊고 지냈다. 그 목욕탕 앞을 지날 때면 내 말에 미안한 듯이 희미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그 말을 괜히 했다 후회하는 날이 길었다.      


  1호가 태어나고 10달 무렵이었나, 아기띠에 매달고 처음 목욕탕에 데려갔다. 그 목욕탕에를. 비록 도란도란 얘기 나눌 상대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예뻤고 그 시간이 즐거웠다. 빨갛게 닳아 오른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대야에 쏙 들어가 앉아 노는 모습도 좋았다. 큰 탕에 들어갈 때는 무서워하며 내 목에 매달려 맨살을 비비는 것도 좋았다. 엄마가 같이 있었다면 얼마나 얼마나 더 좋았을까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엄마는 이를 다 드러내 보이며 활짝 웃었겠지. 그렇게 가끔씩 1호랑 목욕탕 데이트를 했다.       


  아들뿐인 나는 아이들이랑 목욕탕 갈 일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1호도 7세가 되었으니 동네 목욕탕도 같이 못 가겠다. 코로나가 얼른 가셔야 2호랑도 동네 목욕탕 마실을 가볼 텐데. 흘러가는 시간이 속절없이 아쉽기만 하다. 2호도 크고 나면 나는 누구랑 목욕탕을 가야 하나. 혼자 있는 시간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솔직히 혼자 가는 목욕탕은 조금 외롭고 쓸쓸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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