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코도 예민하다. 냄새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냄새로 기억도 잘한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좋아했던 경목이 오빠는 학교 앞 독서실에서 처음 보았다. 그 독서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세면대가 있었고 늘 살구비누가 놓여 있었다. 살구비누 냄새를 맡으면 그때 그 독서실로, 그때 그 오빠를 좋아하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2호를 임신한 것을 알고 병원에 갔을 때 17년 만에 처음 그 오빠를 산부인과에서 보았다. 아빠가 되려는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오빠를 계속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살구비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2호도 코가 예민한 모양이다. 냄새 맡기를 좋아한다. 뭐든지 "냄새 나파보자(맡아보자)."라고 한다. 걷어놓은 빨래며 이불자락, 냉장고 속 반찬들까지 코를 갖다 댄다. 어느 날은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내 옷자락을 붙들고 킁킁거리길래 무슨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2호가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엄마냄새"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냄새가 생각났다. 엄마 등에 달라붙어 누워서 런닝 안에 얼굴을 넣고 코를 대고 있으면 엄마는 대답을 알면서도 늘 물었다.
엄마 : 머하노? 다 큰 것이 징그럽게.
나 : 엄마냄새 난다.
엄마 : 엄마냄새가 먼데? 반찬 냄새나겠지.
나 : 아니야 아니야, 엄마 냄새가 있어.
엄마는 매일같이 샤워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늘 달큼한 향기가 났다. 코 안으로 엄마냄새가 들어오면 저 목젖이 매달린 그즈음에서 침이 솟는 달큼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아픈 엄마에게서도 그 냄새가 났고, 마지막에 지냈던 요양병원에서도 엄마가 입고 있는 옷에서 그 냄새가 났다. 엄마를 보내고 옷을 정리하면서 그 엄마냄새때문에 다 정리할 수가 없어 몇 가지는 내가 들고 있었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엄마 냄새는 세월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가끔 그 엄마냄새가 생각난다. 정말로 코 안으로 어떤 냄새가 들어오는 것 같이 엄마냄새가 맡아진다. 그런 날은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 다시 늘어진 런닝 안으로 머리를 밀어 넣고 등에 코를 대고 킁킁하고 싶다.
우리 2호는 언제까지 엄마냄새를 맡으려 할까. 언제까지 엄마냄새를 좋아라 해줄까. 왠지 그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 커서도 내 옷자락을 붙들고 냄새 좀 맡아보자, 엄마냄새 난다고 해주면 좋겠다. 나는 2호가 엄마냄새를 좋아해 줘서 행복한데 우리 엄마는 내가 엄마냄새 좋아해서 행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