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22도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이전 집보다 조금 더 따뜻하다.
오래 전 아는 언니랑 오빠가 결혼을 했고 아주 추웠던 어느 날에 그 집에 놀러 갔다. 신혼집 치고는 꽤 너른 40평대 아파트였다. 원래 풍쟁이였던 그 오빠는 이방 저방 문을 열어 보이며 머라머라 얘기를 늘어놨다. 그중 나의 뇌리에 박힌 한마디가 있었다. 방방이 붙어있는 보일러 조절기에 떠있는 숫자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우리집은 항상 22도다."
과연 22도의 집은 따뜻했다. 우리집은 몇 도인지 알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모오오옵시 추웠다. 아주 오래된 주택인데다 그 당시 후덜덜한 기름값에 우리 식구들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온기를 얻었다. 코가 시리고 말 그대로 이불 밖은 위험했다. 남편이 연애시절 사준 난방텐트를 만나기 전까지 이불 밖으로 팔을 꺼내고 자는 일은 만취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집에서 결혼하고 2년간 1호를 낳고 키웠다. 애가 있어 난방에 신경을 썼지만 그래도 추웠다. 1호가 고생이 많았다. 볼은 늘 빠알가니 얼어 있었고 콧물을 달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다시 겨울이 닥치기 전 따뜻한 시댁에 비집고 들어가 또 2년간 더부살이를 한 다음 우리들만의 첫 집으로 이사했다. 사람들이 그 집도 오래된 빌라라 추울거라 했지만 워낙에 추운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온지라 코가 시리지 않는 그 집은 따뜻한 집이었다.
애들 방에 처음으로 온습도계를 놓았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따뜻한데 22도가 안되다니. 갑자기 춥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추운 집에 살게 만든 것 같은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의 마음은 늘 22도를 향해 달려갔지만 온도는 늘 20도에서 멈췄다. 추운 건 내 마음뿐 아이들은 늘 이불을 다 걷어차고 잤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심히 온도계를 보았다. '22.7'. 22.7도라니. 어쩐지 엄청 따시더라. 22도의 느낌은 이것이구나!! 비록 방문 열고 나가면 거실의 한기에 22도를 금방 잃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22도다!! 역시나 이불을 다 걷어차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니 왠지 흐뭇하다. 23도도 24도까지도 필요 없다. 22도이기만하면 되는 것이다. 22도에 도달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새 해 첫 선물 같은 그 숫자 22. 22에 대한 짝사랑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기분이다.
우리 아빠는 아직도 그 오래된 집에서 꼭 필요한 순간에만 온기를 얻으며 살고 있다. 한때는 떠나고 싶어 안달했지만 요즘 재개발이라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으니 보일러 따위 안 돌려도 그냥 22도이지 않을까 싶다. 비록 입김은 좀 나더라도 말이다. 훅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