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는 못 쓰는 서평1.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by 일상여행자 나래

이름도 모르는 별에 마음을 빼앗긴 소년이 있었다. 그는 그 존재들의 이름과 의미가 궁금했고, 별의 지도를 그리며 질서를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독실한 청교도였던 엄마는 그 기록을 없애버렸다. 자연에 호기심을 갖는 일은 시간 낭비이자 쓸모에 대한 모욕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단지 별에서 꽃으로, 다시 물고기로 대상을 바꿨을 뿐이다. 그는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연결하고, 이름과 지위를 부여하는 일에서 위안을 느끼고 질서를 감각했다. 유일한 편이었던 형의 죽음 앞에서도, 화재로 모든 표본을 잃었을 때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었을 때도, 47초 만에 모든 수집이 산산조각 난 대지진 앞에서도, 그는 자연의 질서를 밝히겠다는 사명을 단호히 밀고 나갔다. 그는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그를 집요하게 읽은 여성이 있다. 룰루 밀러.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이 인생의 진리는 혼돈과 무의미이며, 그러니 네 마음대로 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룰루는 삶에서 방향을 잃고 헤맸다. 강력한 슬픔, 사랑의 상실, 쓸쓸한 무력감. 그녀는 이 진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데이비드의 회고록과 에세이, 동화 등 50권의 책과 수백 개의 텍스트를 뒤져가며 하나의 질문을 품는다. 그는 어떻게 허망함에 짓눌리지 않고 삶을 계속 밀고 나갔을까?


데이비드가 ‘물고기’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세우려 했던 것처럼, 룰루는 데이비드의 삶을 통해 자신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이야기와 그를 읽는 룰루 밀러를 다시 우리가 읽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부터 질문이 솟는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표지를 보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고기들과 인어 여성이 헤엄치고 있다. 책날개의 소개를 보면 저자는 ‘과학 기자’. 처음엔 이 책이 과학 에세이인가 싶다. 하지만 프롤로그를 넘기면서부터, 독자는 단숨에 예측 불가능한 여정에 들어선다. 이 책은 장르로 규정할 수 없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이자, 룰루 밀러 자신의 에세이이고, 중반을 넘어서면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읽히기도 한다. 과학, 철학, 미국의 잔혹사까지 넘나들며,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휘몰아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데이비드가 룰루이고, 룰루가 곧 나 자신이라는 것을. 혼돈을 이겨낼 마법의 공식 같은 걸 기대하며 따라온 독자는, 어느새 허무의 중심에 선다. 우리는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 뿐이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2장에 이르면 또 하나의 관점이 열린다. 한때 ‘부적합’으로 낙인찍혀 국가의 폭력을 겪어낸 애나와 메리의 관계가 등장한다. 메리가 애나를 지켰고, 이제는 애나가 소박한 기쁨과 설렘을 돌려준다. 그들은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어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하다.


13장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제목을 이해하게 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한 문장이 우리의 인식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한때 ‘보잘것없는 것’에 마음을 기울이던 한 소년이 ‘부적합’ 분류하고 소멸시키는 데 앞장서는 성인이 되었다가, 결국 진짜 결말에 이르는 삶의 모순과 우연은 놀랍기만 하다. 숭산스님의 ‘오직 모를 뿐’이라는 명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작가가 다양한 예시로 보여주었듯,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기쁨과 안정을 명확한 목표 설정과 성취를 통해 얻는 데 익숙했다. 마치 인생을 엑셀 파일로 정리하듯, 시련과 갈등을 빠르게 분석하고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모호한 슬픔'과 '근거 없는 불안'은 그런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감정은 충분히 겪고 앓아야만 겨우 지나가거나, 때로는 끝내 지나가지 않고 평생 안고 가야 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말과 글에 기대었다. MBTI나 사주풀이처럼 나를 해석하는 도구도 있었지만, 내 삶의 진실을 가장 정확히 비춰준 건 다름 아닌 나의 표현과 기록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구성했고, 세계를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각조차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이렇게 새겨두려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진실이 삶과 생명 전체에 깃들어 있다.


책을 덮었을 때, 모든 것이 명확해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도리어 다시 혼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획하고 실행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슬퍼하고, 방황하고, 때로는 무너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기쁨의 순간들 또한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264쪽) 그렇게 삶의 들쭉날쭉한 선들은 서로 얽히고 포개지며, 타인의 선들과 맞물려 거대한 그물망을 이루어간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삶의 균열을 들여다보며 경이와 혼돈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인식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여정이다. 표지 속 인어 여인이 심해를 유영하듯, 당신도 그 혼돈의 심연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헤엄쳐보길 바란다.


*챗GPT는 절대 대답 못 할 책 퀴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당신 삶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물고기를 포기하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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