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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8. 2021
알토란 같았던 여름을 보내며
아침부터 술을 부르는 한가위의 해장음식
여름 성수기 내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팥죽 같은 땀을 쏟으며 일했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고군분투한 나에게 포상휴가를 주기로 했다. 월정곰닭은 매주 수요일이 정기휴무이므로, 화요일 퇴근 후에 저녁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하고, 8일간의 휴무 공지를 내걸었다.
부모님이 사시는 여주는 뭐니 뭐니 해도 쌀의 고장.
코 앞에 남한강 지류가 흐르고 있어서 밤부터 새벽까지 내려앉는 자욱한 물안개 덕분에 농사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는 동네다. 올해는 추석이 조금 일러서인지 들판에는 아직 추수하지 않은 벼들이 무거운 고개를 겨우 가누고 있다.
제주에서 올라온 딸년은 감귤 따위를 두어 박스 던져놓고 무람없이 낮술을 마시고 밤술도 마신다. 기름진 음식들에 대한 죄책감마저 잠시 밀어두어도 되는 명절 연휴를 보내다 보면, 하루쯤은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 해장이 필요한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고 많은 명절음식 중에서 추석에 꼭 먹어야 하는 것은 단연코 토란탕이다.
토란에는 독성이 있어서 사람에 따라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토란 뿌리뿐 아니라 토란대를 먹을 때도 그렇다. 엄마 역시 토란을 맨손으로 만지면 가려움이 심해서 꼭 장갑을 끼고 손질해야 했다. 올해는 추석이 여느 해보다 일러서 밭에서 토란을 아직 거두지 못한 탓에 아예 껍질을 벗겨놓은 토란을 오일장에서 샀다.
토란은 삶는 과정이 중요하다. 껍질을 벗긴 토란은 진액 때문에 무척 미끌거리는데, 쌀뜨물에 삶으면 독성으로 인한 아리고 떫은맛과 미끌거림을 동시에 없앨 수 있다.
소고기는 기름기 없는 부위로 준비해 곱게 다져둔다. 소금, 후추, 참기름, 다진 청홍고추, 생강즙과 전분가루를 함께 섞어 밑간해 두었다가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의 크기로 동글동글 완자를 만든다. 완자는 체에 밭쳐 끓는 물에 살며시 넣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익혀서 건져 놓는다. 뭐, 사실 완자가 망가져도 큰 문제는 아니다. 비주얼은 비주얼일 뿐, 맛과 식감에서 큰 문제없이 잘 넘어가 준다면야 위장이 알아챌 리는 없으니.
일반적으로는 시원한 국물을 내기 위해 무를 쓰는데, 엄마는 종종 박 속을 긁어서 나박나박 썰어 넣는다. 해장용 맑은 탕을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는 것이 박 속이다. 무와는 다른, 담백하고 품격 있는 시원함이랄까. 연포탕이나 오징어국에도 함께 넣으면 일품이다. 이번 토란탕에는 박 속과 대하를 넣어 시원하고 깊은 맛을 더했다.
디포리와 다시마를 넣고 진하게 내어 놓은 육수에 토란을 넣어 끓인다. 한소끔 끓으면 박 속과 표고버섯(혹은 다른 버섯도 좋다)과, 빚어서 익혀둔 완자를 넣는다. 곧이어 썰어둔 대파와 매운 고추, 약간의 다진 마늘을 넣는다.
국간장으로 적당히 간을 하고, 껍질을 벗긴 들깻가루를 한 숟가락 듬뿍 넣는다. 매운 고추와 들깻가루의 양은 취향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마지막에 대파를 약간 썰어 넣어도 좋다.
완성된 토란탕에는 달걀지단으로 고명을 얹어 먹는다. 이번에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달걀지단을 썰어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