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신혼

by 나름

나에게 신혼은 가혹했다.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이 파괴되고, 어딘가에서 "넌 도대체 결혼이 뭐라고 생각했냐!", "더 여우같이 더 계산기 두들기고, 주변 얘기도 듣고, 더 신중하고 영악하게 결정했어야지! 이럴 줄 몰랐냐?" 이런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렸다.


그와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게 없었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남편은 결혼 날짜를 잡고 나서도 계속해서 우리가 너무 달라서 잘 살수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고, 이 말에 지친 나는 파혼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다 다른 사람이 만나서 결혼하고, 서로 맞추고 포기하고 그러면서 사는게 결혼이지, 다른 사람들은 그럼 똑같은 사람들끼리 결혼하냐는 나의 말에 그는 메리지블루가 온 것 같다고 이해해달라고 했다.

메리지블루는 주로 여자한테 오는게 아니었나.


35년 넘는 세월의 대부분을 혼자 살아온 그는 동거인에게, 자신이 사랑한다고 선택한 여자에게 하나라도 맞춰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저녁먹고 같이 손잡고 한강을 산책하고 싶어하는 나, 한강에서 혼자 자전거 타고 싶어 하는 그.

같이 골프연습을 가거나 PT를 받으면서 운동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나, 혼자 달리고 싶어 하는 그.

가끔은 핫플에서 분위기도 먹고 싶은 나, 순대국이나 아구찜 등 아재메뉴를 주로 먹고 싶어 하는 그.

해외여행 가고 싶은 나, 강원도도 멀다고 하는 그.

로맨스 코메디 영화 좋아하는 나, 이런 유치한 거 누가 보냐는 그.

드라마 좋아하는 나, 다큐멘터리 좋아하는 그.

소설 좋아하는 나, 소설은 시간낭비, 자기계발서 좋아하는 그.

전시나 공연 좋아하는 나, 그 돈 내고 이거 왜 보냐는 그.


특히나 저녁먹고 혼자 운동하러 나가버리는 남편 덕에 매일 외롭게 저녁시간을 혼자 집에서 보내는 게 혼자서 뭐하는 걸 싫어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힘들고 외로운 일이었다. 내가 이런 것에 불평을 하면 남편은 그냥 각자 좋아하는 것 하면 되지 왜 굳이 같이 뭘 해야되냐고 화를 냈다.


시댁을 가면 왜 남편이 이런 사람인지 이해가 되면서도 내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내 잘못이기도 했다.

시댁은 남편이 어려서부터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각자도생하는 집이었다. 시부모님은 각자의 노동으로 돈벌기 바쁘셨고, 아들 둘을 제대로 돌봐줄 틈이 없으셨다. 그러다보니 가정교육이랄까, 매너와 배려 같은 건 이 가족에게는 사치였던 것 같다. 남 신경쓰기보다 내꺼 챙겨서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남편은 고등학교때부터 거의 독립해서 혼자 살았고, 가족 구성원들이 각각 집을 드나드는 시간이 다르니 식사도 주로 각자 시간될때 해결, 어디 놀러를 가도 가고 싶은 사람만 가고 가기 싫은 사람은 집에 있고 이렇게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친구나 개인적인 일보다 가족과의 약속이 우선이고, 매너, 예의, 배려가 중요한 우리집과는 정반대였다.


친구들은 신혼이라 남편이랑 같이 TV보며 야식도 먹고, 침대에서 수다떨다 잠들고, 틈만나면 어디 놀러가고 행복하게 지낸다는데, 왜 나는 내 인생의 한번뿐인 소중한 신혼이 이렇게 불행한건지, 매일 밤마다 초록색 캡모자를 눌러쓰고 눈물을 감추며 아파트 단지 안을 하염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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