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질문

by 나른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_허은실 <목 없는 나날>
<나는 잠깐 설웁다>




난해하다. 이 질문을 했을 때, 사람마다 각자만의 답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나에겐 어떤 것이 더 난해하지?

타인은 나에게 평생에 걸쳐 써 내려가야 하는 숙제 같다. ‘사람은 대상이 필요하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쨌든 사람은 혼자서는 못 산다. 그게 꼭 사람이 아니어도, 일이든, 신념이든, 물건이든, 동물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생을 함께 지내며 나를 비출 대상이 필요하다.
그중에 가장 난해한 것이 사람이겠지. 가장 예측 불가능하니까.

타인은 나를 보여주는 거울 같다. 내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못 돼 먹은 사람인지, 얼마나 배려심 많은지, 얼마나 이기적인지 보여주는 거울.
그 거울 앞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나는, 타인에 의해 이리 저리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가 되는 것 같다.

내가 타인을 난해하게 여겼던 것은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일 것이다.
엄마 말로는 어릴 때 유치원을 다녀오면 어느 날은 한 없이 신나있고, 어느 날은 한 없이 어두웠다고 한다.
청소년기 때는 거의 빠짐없이 또래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아니, 따돌림을 잘 당했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그게 반복될 수록 친밀함을 쌓는 법을 몰라 허덕였다. 결국 그 시절에 남은 친구가 없다.
항상 원인을 나에게 돌렸다. 내 성격의 어떤 부분이, 내가 했던 어떤 말이, 어떤 행동이 문제일 거라고. 그러면서 나를 최대한 표현하지 않는 것이 내 생존 방식이 됐다.
여기서, “그 아이들도, 너도 잘 못하지 않았다.”는 양비론은 정말 듣고싶지 않다.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잘못이 있다. 그러니 내가 그렇게 괴로웠던 거겠지.

항상 무리의 중심이 아닌 무리와 바깥의 어느 경계선, 변두리에 있었다. 홀로 마음껏 생각하고 충분히 우울할 시간이 항상 주어졌다. 어릴 적 나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아팠다.
지금의 나는 무리와 떨어져 있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면서도 외롭고 두렵다. ‘날 좀 내버려뒀으면...’ 하면서 ‘날 혼자 두지 않았으면...’ 하는 이상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사실 타인의 애정을 포기한지 오래다. 남에게 친해지자고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상대가 나에게 와주거나, 친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러고 보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졌는지 신기하다.

나는 보기보다 강하고 보기보다 약하다.
나는 굉장히 친절하고 굉장히 예민하다.
나는 생각보다 관대하고 생각보다 냉정하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단순하고 어떤 면에서는 복잡하다.
나는 쉽게 용기 내고 쉽게 움츠러든다.
나는 이렇게나 난해한 존재다.
감히 누구에게 이런 나를 견디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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