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과 노력 그리고 보상

by 나르하나

일의 성공과 성취를 논할 때, 그것이 운에 의한 것인지 혹은 노력에 의한 것인지는 때때로 논란이 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운과 노력은 하나를 보는 두 가지의 관점이다.


먼저 운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운(運)이란 자연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반응이다. 운이 좋다는 것은 자연의 흐름과 한 인간이나 조직의 흐름이 잘 맞아떨어져 무탈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며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공과 보상이라는 것은 결국 이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자연 흐름의 작용인 운 없이는 성공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의 행위가 동반되어야 하므로 노력이라는 것 없이는 얻을 것도 없다.

즉 운이 좋다는 것은 최소한 노력할 수 있는 운을 포함하고 있음이며, 노력을 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최소한 그 노력이 환영받고 드러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까지, 즉 운이 맞아떨어질 때까지 지속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공했다 하여 교만할 것 없고 실패했다 하여 좌절할 이유도 없다. 성공한 자는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니 겸허할 일이며, 실패한 자는 아직 그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인내하며 스스로를 좀 더 갈고닦을 일이다.


세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주체는 나의 의식이다. 의식의 변화는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불러오고 그로 인해 운 또한 달리 작용한다. 즉 내가 변하면 운도 변한다. 반대로 운이 변했기에 나도 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자신이 변하면 운도 변하고 있는 것이고 운의 변화는 자신의 변화로 알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느냐 이지 자연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즉 운의 유무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설령 인간이 자연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정해진 길을 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명확히 인식할 수 없다. 어차피 운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자욱한 안갯속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단지 그 안갯속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고 배우며 깨우칠 것인가만 남는다.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은 현재의 리얼한 체험을 위함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지금 여기에서 명확한 체험을 하고 또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불명확하고 알 수 없기에 현상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뻔히 보이는 미래와 함께 살아간다면 현재의 강렬한 인식과 경험은 사라질 것이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불안과 고통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누구나 하고 있다.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노력이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사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면 노력의 여부도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다만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만 남는다.


노력은 초점을 맞춘 곳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봄이 오면 싹이 튼다. 하지만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결실을 맺을 것이다.

땅을 그대로 방치한들 때가 되면 잡초라도 무성하게 자라나듯 시기가 무르익으면 모두가 행위에 따른 결과를 맺고 보상을 받는다. 다만 노력의 방향성에 따라 그 보상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보상이라고 여겨지지도 않는 보상이 주어질 수도 있다.

결국 성공과 보상을 위해 중요한 것은 운과 노력의 여부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노력을 쏟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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