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y 나르하나

이 질문은 중요한 질문인 듯하면서도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에 이렇게 나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었지만 이미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 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은 화두처럼 끊임없이 내면을 자극하고 새로운 것들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헛된 공상 취급을 받기에 딱 좋은 질문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데 이러한 질문들이 딱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으며, 그저 답도 없는 질문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앞이 막혀 전혀 보이지 않는 힘겨운 상황에 처하면 이러한 질문들을 다시 떠올려 보기 마련이다. 그럴 때 이 질문들은 그 효용 가치를 지니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일반적이고 뻔하다.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현재에 충실히 살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또 아니다. 이 물음은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데, 자신을 잘 모르면 진정 하고 싶은 것도 모를 것이고 현재에 충실하려 해도 그 현실조차 명확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현실 인식은 명확한 자기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명확한 자기 인식은 자신을 살펴보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내 마음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 내가 무엇에 의미를 두고, 어떠한 상황에서 정말로 기뻐하는지 또한 화가 나는 지점은 어디이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보다 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주어진 사회적 관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내면의 관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좀 더 통합적 시각에 다가선다. 내면의 관점이라는 것은 아집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내면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표면적 나를 넘어 보다 깊이 있는 지점으로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깊이 알아야 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가 나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을 소우주라 하는 것은 인간의 여러 요소나 모습이 우주의 모습을 닮아서 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 이유는 인간의 잠재된 의식이 우주처럼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다. 우주 밖으로 뻗어 나가도 그 끝에 다다르기 어렵지만 내면으로 들어서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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