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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Jan 05. 2023

널 목 졸라 죽이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널 목 졸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1

어느 날

스산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그날, 가정법원으로 출발했다.  적막한 차 안에는 작게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가 차 안 공기를 채웠다.


그 해 결혼식을 올렸고.

그리고 같은 해 가을, 가정법원에서 이혼했다.


가정법원에 도착해 휠체어를 꺼내서 옮겨 내렸다.

문자로 통지된 장소로 가보니 그는 아무 감정 없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고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수많은 “이혼할 부부” 들 뒤에 줄을 섰다.

여긴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기다리는 줄도 아니고, 즐거운 놀이기구를 타려고 기다리는 줄도 아니었다.

그들의 각자 사정을 표정에 숨긴 채 뭔 지 모를 것을 기다리며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줄이 빠르게 줄어들고 우리는 이혼 판사 앞에 앉아

이혼에 동의하십니까 라는 하루에 수백 번은 똑같은 말을 했을 법한 판사의 말에

네.라고 대답하곤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나오는 길 그는 내가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잡아주었고, 혼잡한 복도에 누군가 날 밀치려고 했을 때 인상을 쓰며 저지해주었다.


나는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해야 할 까.

법원에 오기 전 며칠 전부터 고심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줘버린 사람에게, 우리 아이의 안위를 궁금해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 드라마처럼 뺨을 때릴 가. 아니다.

휠체어에 탄 내가 그의 뺨을 때리기엔 실패 확률이 높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 조제는 츠네오의 전 여자 친구의 뺨을 때린다.

그 여자 친구는 조제가 때릴 수 있도록 허리를 숙여 주었지 만 , 그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최대의 모욕적인 욕을 시원하게 퍼붓고 올까.

제일 마음에 들었지만, 또한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내 아이 아빠인데, 라는 ‘엄마 다운’ 생각을 해서 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법원 1층에 내려와 그에게 잘 지내.라고 말하고

두 손으로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돌려 내 차로 돌아갔다.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급하게 차로 올라타 거울로 그의 행적을 찾아보았다. 이미 없었다.

그대로 핸들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한 참을 울었다.

누군가 들을까 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랬다.



by.nari




나는 슬퍼할 공간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돌아가야 했다.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아빠가 외면한 아이를 나는 보듬어 주어야 했다.

내가 선택해 낳은 아이고, 그 아이를 최소한 20년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나는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척해야 되는 엄마였다.

집으로 돌아가 나 대신 아이를 육아해주고 계신 친정 엄마에게 덤덤한 척

“다 끝났어.”라고 말했다. 내뱉었다.

그런 나를 엄마는 잘했다.라고 말해주었고 그리고 끝이었다. 아니 시작이었다.


내 일상은 덤덤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언 갈 하려고 했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 이 글은 특정 누군가를 지칭하거나, 비판할 의도가 담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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