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님을 백수님이라 칭하지 못하고...
기자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사람들이 날 만나서 ‘기자님’이라 칭한다.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는데 마땅히 예의를 갖춰 부를만한 호칭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그리 부를 터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그냥 OO씨라고 부르셔도 되어요”라고 하지만 그 마저도 의외로 쉽지 않은가 보다. 대안으로 “그럼 OO님이라 부르시던지요”라고도 하지만, 그또한 입에 잘 안 붙는 모양.
결국 기자도 아닌 사람이 기자님이라 불리니, 이참에 다시 기자가 되어야 할까 싶은 주객전도적 생각도 든다.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명함이 없어 뻘쭘할 때가 있다. 정확히는, 나보다 상대방이 더 뻘쭘해하는 거 같아 그게 미안하다. 명함이 없다는 게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나름 바쁘게 살고 있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하고 있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며, 얼마나 팔릴지 모를 책의 일부를 대박 꿈에 젖어 열심히 쓰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아직은 돈이 안 되는 일들이다. 바로 이게 문제라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문제일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진짜 문제다. 밥벌이를 못하고 있다.
밥벌이를 하면 자연히 명함도 따라올 터. 명함 파줄 곳 몇 군데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확 나를 당기지 않는다. 이미 백수라는 이름을 가진 자의 몸값은 시장에서 한 단계 후려쳐진다. ‘네가 아직 배가 덜 고프구나’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후려쳐진 몸값을 부르는 이들에게 순순히 목덜미 잡혀 끌려가고 싶지 않는 게 진짜 내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도 실험 중이다. 백수지만 그래도 비빌 언덕이 옆에 있어 이런 실험을 할 용기도 있다. ‘품위 있는 백수’를 가능케 하는 것이 있다.
품위 있는 백수의 조건은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