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취직을 마음에 품는 언론인들이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을까?
언론이 ‘제4의 권력’으로나마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세 개의 권력-행정, 입법, 사법-을 감시, 견제하고 쓴 소리를 마다 않는다고 대중이 ‘막연히’ 믿어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같은 '와치독(watchdog)’ 역할을 가슴에 품고 사는 언론인(언론사 아님)이 적지 않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속보경쟁에 목매느라 어느새 샐러리맨으로 전락한 신세를 한탄하는 언론인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기자가 가오가 있지’를 되뇌며 이들이 양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일이다.
언론사에서 정치부 좀 해봤다 하는 사람들은 국회 안팎에서 만나는 다수의 정치인들을 보며 ‘저런 양반도 국회의원하는데 나라고 못할까’라는 마음을 가져봤을 터다. 이런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봤고, 또 직접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중(출마)’를 위해 기자라는 포지션을 십분 활용해 스펙을 쌓는 사람들도 자주 봤다. 기자협회 및 노조 간부, 해외특파원, 해외연수 등이 드러나는 스펙이라면, 각종 권력에 가까운 이들과의 밥, 술자리를 통한 네트워크 확대는 보이지 않는 스펙이라 할 수 있다. 정치를 해보겠다 하는 이들 중 좋은 기사로 스펙을 쌓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정치권에 발 담그기를 꿈꾸던 이들 중 꿈을 이룬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출마를 하더라도 당선되지 못하거나, 출마 자체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그나마 정치권 진출에 성공한 이들은 대중에게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진 방송사 기자들이고, 특히 MBC 기자들이 유독 많이 비례대표로 발탁돼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다. 박영선, 최문순, 김성수 등이 대표적이다. 비례대표는 아니지만 당선 유력지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정동영, 심재철, 신경민, 박광온, 최명길 등도 있다. 이밖에 SBS 출신 한선교, 유정현, KBS 출신 안형환, 신성범도 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으로는 이낙연, 박병석, 이상일, 강효상 등이 있다. 훨씬 더 많은 이름들이 있으나 현재 시점에 존재감이 있거나 아직 기억에 아스라이 남아 있는 이들만 꼽아도 이 정도다.
이들 중 다수는 정치권으로 발을 옮기며 후배들로부터 적잖은 원성을 들었을 것이다. 언론 노조에 속한 후배 언론인들은 선배들의 정치 행보를 두고 ‘언론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며 매번 성명을 내왔다.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품은 채 과연 공정하고 합리적인 취재활동을 벌였을 지에 대한 의심은 차치하더라도 후배들 취재활동의 자양분인 대중의 신뢰를 이들이 현저히 갉아 먹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비판이 억울한 이들도 몇몇은 있었을 것이다. 마치 변검술 하듯 언론인에서 곧바로 정치인이 된 것이 아니었거나, 혹은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정이 있던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떨어진 국회의원은 사람도 아니’라는 자조적 문구가 여의도에서 회자되듯 국회의원은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만 그 생명이 유지된다. 이러한 점에서 언론인의 정치인화는 언론인 및 공천권을 가진 일부 정치인들의 직업윤리 차원에서 비교적 개인적 수준의 일탈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했다.
이러한 개인적 일탈이 정치사회 구조적 문제로 변모된 것은 이명박 정권때부터라 할 수 있다. 홍보수석 제도를 신설하고 이 자리에 언론인 출신인 이해성, 이백만 등을 기용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나, 정치인이 되고자 꿈꾸는 언론인들과 언론을 길들이고자 하는 정치인의 꿈, 두 손바닥이 본격적으로 만나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권부터다. 대통령제 하 권력의 최고 정점인청와대에 언론인 출신들의 자리가 사실상 고정적으로 마련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히 SBS에 애정이 깊었는지, SBS 고위 간부들의 청와대행이 줄을 이었다. 최금락(홍보수석), 하금열(대통령 비서실장), 김상협(녹색성장기획관)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비단 홍보수석 자리에만 국한되지 않은 전방위적 언론인 기용이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도 홍보수석은 언론인 출신들 자리였다. YTN 출신 윤두현을 비롯해 SBS 출신 이남기, 김성우, 배성례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SBS 노조는 “한 정권에서 그것도 무당이 국정을 좌지우지 해 온 정권에서 SBS 출신의 인사 3명이 홍보 최고 책임을 담당하는 미증유의 일이 벌어졌다. SBS는 박근혜 정권, 아니 최씨 일가 무당 권력의 심부름센터가 아니다” 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아침에 방송 편집회의에 참석한 사람이 오후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표가 난 사건도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다. KBS출신 민경욱이 주인공이다. 민경욱은 2015년 10월까지 대변인직을 수행한 뒤 2016년 20대 총선에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아 현재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청와대 스펙을 필요로하는 다수 정치인들의 최종 목표가 ‘총선’ 승리에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민경욱이라는 언론인의 정치인 변신은 매우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실제 민경욱의 청와대 대변인행에 충격을 받은 많은 언론인들이 비판 성명을 내면서도 숨겨진 내심은 ‘부러워죽겠다’라는 것이라고 꼬집은 언론인들도 있었다.
‘부러워죽겠다’는 언론인들의 심리, 그리고 그 심리를 이용하는 정치 권력. 이는 이른바 ‘보수적' 인물들만의 비양심적 민낯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의 2기 비서진 가운데 윤영찬 국민소통수석(홍보수석)을 대체하는 인물로 윤도한 MBC 논설위원이 발탁됐다. 불과 수일 전까지 MBC에 출근했다고 하니, MBC에 적을 둔 채 인사검증에 응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한겨레 여현호 기자를 국정홍보비서관 기용한 데 대해서도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특히 한겨레 구성원들의 좌절감이 적지 않을 터인데, 김의겸 현 대변인은 한겨레 선임기자 재직 당시인 2017년 5월 청와대 대변인 내정설이 돌았으나 한겨레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로 결국 문재인 정부 첫 대변인 타이틀은 얻지 못하고 박수현 대변인 후임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바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비슷한 시기 정당 출입을 하던 SBS 기자는 돌연 사표를 내고 일주일여만에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으로 출근을 시작하기도 했다. 당시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만큼 ‘부럽다’는 목소리도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적잖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민경욱의 청와대 대변인행을 두고 ‘언론 길들이기’라며 반발하던 목소리들이 지금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른바 ‘진보’ 정권에 대한 관대함인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 욕을 못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들도 ‘인생2모작’에 성공한 선배들을 뒤따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민경욱이 있어도 박근혜 정권은 몰락했고, 김의겸이 있다하여 문재인 정권이 언론의 화살을 수월히 피할 수 있을까? 그런 반면, 민경욱이 청와대로 가면서 KBS는 ‘국민의 방송’보다 ‘정권의 방송’이라 불리게 됐으며, 김의겸이 청와대에 가면서 한겨레의 예의 용기 있는 비판이 무뎌졌다는 괜한 착시감도 든다. 여현호가 가세했으니 한겨레에 대한 신뢰 하락은 남겨진 이들의 몫일 뿐이다.
추락하는 언론에는 날개가 없다. 추락 속도가 너무 빨라 하루라도 빨리 낙하산을 펴고 안착할 곳을 찾는 눈들이 여기저기 희번득인다. 청와대로 향한 언론사 선배를 칼날을 잔뜩 세워 비판하는 후배 언론인들 마음 속에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눈꼽만큼이라도 자리잡는다면 이들이 앞으로 자기검열을 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 청와대를 거쳐 국회로, 공공기관으로, 또 다른 행정부로 옮겨간 언론인 선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끌어주고 밀어주겠다 해도 ‘노 땡큐’를 외칠 자신이 있는가?
결국 청와대의 언론인 기용은 정권도 죽고, 언론도 죽는 공멸의 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