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병역기피, 세금탈루.... 공안검사가 총리에서 대통령까지?
겨우 4박5일 한국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 그 사이 발생한 굵직한 뉴스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그 중 코미디 같은 정치 뉴스가 하나 있더랬다. 황교안의 자유한국당 입당과 '친황'이라 불리는 계파의 생성, 이들이 자한당 당권과 이후 대권까지 바라본다는 이야기.
자한당이 어떤 인물들의 집합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아니까 자한당 이야기는 각설.
'황교안'이 어떤 인물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하고자 2015년 황교안 총리인사청문회 당시 썼던 칼럼 비스무리한 글을 소환한다. 우리나라 언론의 망각증 증세가 심하다고는 하나 국민들의 기억력을 자꾸 테스트하려 드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어찌해야 할까.
2015.6.14
황교안이 주는 '교훈'
50여일 전으로 돌아가 보자.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던 총리가 스스로 부패 혐의를 뒤집어쓰고 임명된 지 63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사건은 누가봐도 코미디였다. 부동산 투기, 본인과 자녀의 병역기피 및 특혜, 논문 표절, 언론 통제 발언에 이르기까지 이완구 후보자가 총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손으로 꼽기조차 어려웠지만 결국 총리직을 쟁취해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성완종이라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었던 사람은 여전히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달 가까이 공석이었던 총리직에 황교안 법무장관이 내정됐다. 메르스 사태로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열렸던 인사청문회는 그간 제기됐던 의혹 - 전관예우, 병역기피, 세금탈루, 역사 및 사회 인식 - 의 물웅덩이에 파문도 제대로 일으켜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인준을 거부하기로 했지만, 새누리당은 법정시한 내에 임명동의안 처리를 완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씁쓸하지만, 황교안 후보자는 그의 전임자처럼 무사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언젠가부터 유행한 NIE(신문활용교육)덕에 요즘 10대들은 여느 때보다 신문을 많이 보며 자란다. 그만큼 시사에 밝을 터다. 이 학생들은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위의 코미디 같은 현실을 보며 어떤 생각을 가질까?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얼마 전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른바 '사'자 붙은 직업을 가진 부모의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는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위 명문대에 진학한 선배가 후배들과의 대화를 위해 모교에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너희들은 공부 안 해도 이 나라에서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살 거야. 하지만 '계급'을 유지하려면 공부해서 명문대에 가야 해."
이제 스무 살, 갓 사회에 발을 내딛은 사람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놀라웠다. 저 스무살 학생의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제1의 스승인 부모를 비롯해, 학교, 사회가 이 같은 인식에 영향을 끼쳤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와 학교 교사, 그리고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른들의 인식은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을까? 격차는 있겠지만 상당 부분 언론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언론은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명해 대중에게 전달한다. 총리 후보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매일 아침 신문과 매일 저녁 뉴스에 중계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상식적인 행태 안에서 조명되는 삶의 궤적들은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의전서열 다섯 번째인 총리 자리에 곧 앉게 될 황교안 후보자의 인생 궤적을 보자. 의혹을 품게 하는 대목은 대략 십여 가지다. 만성담마진(두드러기)으로 인한 병역 면제, 고검장 퇴임 후 17개월 동안 16억 원 소득, 불법성 짙은 사면(로비)사건 수임, 삼성X파일 부실수사,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수사방해, 세금 탈루, 편법 증여,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편향된 역사의식(4.19혁명을 '혼란'으로, 5.16쿠데타를 '혁명'이라 표현), 기독교 편향성 등. 더불어, 황 후보자는 이 의혹들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위원들의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아 인사청문회를 무력화했다는 비난까지 함께 받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관련) 제 때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메르스 공포에 떠는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하기도 했다.
이같은 행태에 대한 법조계 출신 새누리당의원들의 반응도 가관이다. 김회선 의원은 "대형로펌이라는 법조계 현실을 경험하지 않으신 분들은 여러 오해를 하실 수 있는데, 짧은 시간에 답하려니 (황 후보자가)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윤석 의원은 총리 자질과는 관계없는 그의 취미(색소폰 연주)를 거론하며 "총리가 되시면 연주회라도 한 번 하시라"고 권했다.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이러하다. '법과 원칙'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공직자의 삶이 탈법과 꼼수, 아첨으로 얼룩져 있다. 유독 황 후보자만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지난 7년여간 청문회를 거쳐간 수많은 이들이 그와 유사한 삶을 살아왔다. 병역기피,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는 청문회에 선 사람들의 기본 세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고위 공직에 올랐다. '이 정도로만 살아도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온 사회에 병균처럼 퍼지게 된 결정적 이유다. 2002년 여름 두 명의 총리 후보자(장상, 장대환)가 높은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는 장면을 생생히 지켜봤던 많은 이들이 '앞으로 공직자가 되려면 청렴하게 살아야겠구나'라고 다짐했던 게 태고적 기억처럼 아스라하다.
돈이 권력이 된 시대라고 한다. 돈이 권력과 명예를 통제하고, 명예는 돈을 좇다보니 돈과 명예가 세트로 움직이는 세상이 됐다. 돈과 명예를 양 손에 쥐고 기득권에 합류한 이들이 스스로를 '지도자'라 칭하며 그들만의 리그, 계급을 형성한다. 가까이서 이 매커니즘을 지켜보며 큰 대학생이 비슷한 배경을 가진 후배들 앞에서 계급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한 번 획득한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동일 계급 내 사람들과 똘똘 뭉칠 것이다. 그외 사람들도 이제나저제나 자신들에게 상위 계급의 문이 열릴 때를 기대하며 분주히 살아갈 것이다. 성긴 법과 원칙이란 그물망을 기대하며.
법과 원칙을 부르짖으면서도 자신을 향한 법과 원칙의 그물은 성기게, 대중을 향한 그물은 촘촘하게 짜는 이들, 그리고 개인적 도덕성은 물론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부재한 이들에게 지도자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마뜩하지 않다. 그러나 국어사전은 지도자를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가치 중립적인 단어인 것이다. 때문에 황교안 후보자같은 사람이 총리직에 오르게 되면 그는 부끄러움 없이 '우리사회의 지도자'를 자처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총리 황교안'을 한 때 정부를 이끌어간 지도자 중 한 사람이라고 배우게 될 것이다. 지난 수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정치를 하려는 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책을 내는 것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봤다.
아무도 안 살 책이란 걸 그도 알고 만든 책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ala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