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윤리학

by 산문꾼

아내는 임산부다. 임산부가 먹고 싶은 게 많다는 건 익히 들어왔지만, 3개월 사이 내가 관찰한 특징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보이는대로 일단 세가지 정도로 정리했다.



첫째, 먹고 싶은 것만큼, 안 그런 것도 많아진다.


“삼겹살 싫어. 자글거리는 기름 먹을 생각하니까 느끼해.”

“비린 향이 싫어."

"김치 냄새도 싫어.”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메스껍고,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했다. 그리고 나더러 혼자 먹으란다. 퇴근하고 온 나는 배가 고프지만, 티를 낼 수는 없는 법. 냄새도 못 맡는 그녀 앞에서 맛있게 먹는 건 뭔가 이상하다. 배고픔을 나누는 것만이 부성애 같았다. 곧 생각이 바뀌었다. 먹어야만 건강한 아빠가 될 수 있다. 최대한 냄새와 거리가 먼 것들을 찾았다. 콩나물 무침, 시금치 무침, 고추장 한 숟가락, 참기름 반 숟가락을 비볐다. 한 입과 함께 참기름의 고소함이 식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맛의 기쁨을 절제한다. 이것이 바로 부성애지 않을까. 소리없이 곱씹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나물의 풋내가 입안 가득 퍼진다.



먹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먹고 싶은게 떠오른다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수시로 바뀐다. 임산부의 두 번 째 특징이다.


“자기, 나 콩나물 밥 먹고 싶어.”

1년 전, 결혼 축하 선물로 받은 요리 레시피 책을 펼친다. 만개의 레시피 연구팀의 야심작, 《대한민국 대표요리 152》. 내 새끼는 어디가서 밥 못 얻어 먹었다는 소린 안 듣겠다는 허세와 함께 하나씩 연습중이다. 콩나물을 얹히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밥은 밥솥이 해주지만, 사랑은 아빠가 주는 거란다. 양념장을 만든다. 고소함과 짭짤함 만으로도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하물며, 달짝함과 파 마늘의 향까지 베었다. 이 모든 걸 표현 하기엔 내가 가진 언어가 너무나도 하찮다.


“밥먹자!”

“자기 진짜 미안한데, 샌드위치가 먹고...싶어..졌는..데. 진짜 미안.”

서브웨이에 전화했다. 쿡쿠의 음성은 날 비웃듯 취사완료 안내를 또박또박 읊었다. 오늘 저녁은 에그마요 샌드위치다.



마지막 특징이다. 임산부의 입맛은 즉흥적이다. 그 날 저녁은 디저트가 한 몫했다.


“오빠, 딸기빙수 먹고 싶어.”


엄마는 아버지가 한겨울 늦은 밤에 딸기를 사러 시가지를 넘었던 적이 있다 했다. 요즘이야 딸기가 겨울에도 당연한 과일이지만, 이것의 제철은 원래 봄이지 않은가. 아무튼, 아빠는 딸기를, 아들은 딸기빙수를 구해야 했다. 앱으로 시키려고 했는데, 배송비가 4천원 이었다. 이정도 값이면, 아버지가 딸기를 찾아다녔던 거리와 견줄만 했다. 직접 가자니, 삼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늦은 시간, 왕복 40분의 거리, 이중주차. 하지만 우리는 메뉴를 정했고, 난 덧붙였다.


“널 위해서라면 내 모든 걸 줄 수 있어. 배송비까지도.”

이전 05화아침의 회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