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기출을 다 풀면 붙을 수 있을까

by 산문꾼

이전화


인강만 믿고 공부했더니, 이해도 기억도 휘발처럼 사라졌다.

진도는 밀려오고, 머릿속은 썰물처럼 비워졌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나. 다음 해에도 나는 또다시 인강을 켰다. 누군가가 잘 설명해주길, 길을 알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이 익숙한 마음은 회사에서도 종종 느꼈던 감정이었다.


우리는 대기업이 아니다. 신입사원을 뽑고 석 달 동안 회사 철학이며 업무 프로세스를 차근차근 가르치는 그런 곳과는 다르다. 여기선 입사 다음 날부터 바로 실전이다. 선배들은 “매뉴얼에 다 나와 있어.” “우린 책을 통째로 씹어 삼켰지.” 마치 모든 답이 거기에 있다는 듯, 도사처럼 말했다.


개념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실전에 적용한다는 건, 우리 같이 작은 회사에선 배부른 소리였다. 현장은 전쟁터 같았다. 메뉴얼은 총알보다 느렸고, 나는 실수로 총을 배우는 병사였다. 실수하고, 수습하고, 나중에야

“아,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깨닫는 식이다.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엔 '민법'이라는 전쟁터였다. 개념을 익히고 문제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풀다가 이 말이 대충 그 말이겠거니 짐작하는 식이었다. ‘부동산학개론’은 상식에 기대어 어찌어찌 해볼 수 있었지만, ‘민법’과 ‘공법’은 우리 말인데 읽을수록 우리나라 말이 아닌거 같았다. 가령, 근저당권의 정의는 이렇다.


“채무자와의 계속적 거래계약 등에 의해 발생하는 불특정 채권을 일정액의 한도에서 담보하는 저당권을 말한다...”


지금 다시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불안할수록 더 인강에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작년 불합격의 기억이 뒤따랐다. 이번엔 꾹 참고, 텍스트 위주로 밀어붙였다. 문제를 먼저 풀고, 틀린 지점을 따라가며 개념을 다시 짚었다.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할 건 해야했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언어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고, 천천히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문제풀이 위주의 시험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다. 민법 선생님은 “버려야 산다”고 했다. 나올 법한 개념을 확실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버리지 못했다. 다 주워 담으려다 결국, 하나도 못 건졌다.


'이 문제는 매년 나왔으니까 또 나올테고.'
'저건 5년 간 안 나왔으니까 이제 나올 때가 됐어.'

'한 번도 안 나온 문제지만, 중요한 개념이니까 이번엔 킬러문항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머리속 계산은 그럴듯했지만, 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결국 전부 욕심이라는 걸.


기출을 한 번이라도 스쳐간 문제는 모두 쓸어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갈퀴질하듯, 닥치는 대로 문제를 풀었다. 결국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진도에 대한 부채감은 이자에 이자를 낳았다. 시험은 10월이었고, 나는 9월까지 총 아홉 번의 모의고사를 봤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형편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공부를 한 게 아니라, 불안에 끌려 다녔다.




1차시험 모의고사
2차시험 모의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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