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계획은 거창하게 세웠지만,정작 ‘하루에 얼만큼 가능한지’부터 따져봐야 했다.
과목은 총 6개. 한 과목당 강의가 20강에서 40강까지, 평균 잡아 30강이라 치면 총 180강이다. 퇴근 후 공부 시간? 현실적으로 하루 2~3시간 정도. 그런데 주 5일 중 이틀은 야근, 업무상 저녁 약속, 가족과의 시간으로 빠진다. 남은 건 평일 3일, 총 9시간. 주말은 양심 있게 하루 8시간씩 공부한다 쳐서 16시간.
합치면 25시간.
하지만 여기서 진짜 중요한 계산이 남아 있다. 집중력 뚝 떨어지는 멍때림, 쉬는 시간, 졸음, 딴생각 타임을 다 빼고 나면, 순수하게 책상 앞에서 몰입 가능한 시간은 약 20시간 남짓. 이 20시간으로 180강을 돌려야 한다.
보통 전과목이 업로드되고 나면, 5주 만에 1순환이 끝난다. 그건 종로에서 현강으로 직접 듣는 일정에 맞춘 속도다. 하루 6시간씩, 주 5일. 그들은 학원에 출근하듯 나간다. 그리고 앉아서 듣고, 또 듣는다.
학원이 그렇게 자랑하던 ‘합격률’엔 단순한 수치말고도 견딤의 시간이 녹아있었다. 그들에게 공부는 목표가 아닌 생활이었고 그 안엔 열정보다 더 오래가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몇 달 만에 붙었다는 블로그의 후기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 사람들이 실력이 부족해서 하루 6시간씩 1년을 버틴 걸까.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히 공부한게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낸 거였다. 내가 '선택'의 문제로 힘들다고 징징댈 때, 그들은 도망칠 수 없는 '필수' 위에서 버티고 있었다.
난 1순환 끝내는 데만 8주가 걸렸다. 그마저도 인강만 들으면 금새 휘발이 되기 때문에, 복습까지 끼워 넣으면 2주가 더 붙었다. 그렇게 되면 다들 3순환이 들어갈 때쯤 나는 겨우 1순환 끝내고 앞부분 개념은 이미 휘발된다. 진도는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내 머리속 개념은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2개월이 지나 다시 책을 펴보면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기가 막힐만큼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급여가 자산의 속도를 못 따라간다고 한탄하는 직장인은, 공부할 때조차도 늘 뒤처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