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굉장히 의미 있고, 존중받을 일이지만 자격증 공부엔 대전제가 있다. 합격할 것. T처럼 말하고 있지만 난 F다. 글을 쓰면서도 위로받고 싶고, 응원받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회사에서 공부한다는 말은 금기다. 일하다 잘못을 저지르면 (공부 때문에) 일을 등한시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데드라인을 맞추지 못한다면 (공부하느라)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비슷한 직급으로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경쟁'을 증폭시킬 수 있으며, 상사를 포함한 사측에겐 다 가르쳐놨더니 '이직'을 앞둔 배신자처럼 보일 것이다. 나머지 나에게 관심 없는 이들에겐 '독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옛부터 '말하는 이'는 경솔한 자로 낙인찍혀왔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느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아직까지 쓰이는 걸 봐서는 침묵만이 살길이지 않을까.
알면서도 입이 너무 근질거린다. 퇴근하고 식사 후, 애기들 씻기고,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21시에 독서실에 간다. 주경야독하는 나는 묵묵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무거운 공부가 실려있는데, 어떻게 내가 빈수레일 수 있냐고 따지고 싶다.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묻는다면, 벼는 벼고 나는 나라 답할 테다. 어디 대나무 숲에 가서 여러분 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만 내일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나는 친한 동료에게 푸념을 던졌다. 퇴근하고 중개사 공부하는데 너무 힘들어 죽겠다고. (그러니까 대단하다고 칭찬도 해주고, 고생한다고 위로도 해주고, 합격하라고 응원도 해달라는 말이었다.)
"우와 진짜? 대단해.."
영혼이 없다. 그리고 바로 화재를 돌린다. 이번 주말에 자기 혼자 애기를 봐야 하는데, 키즈카페에 이제 막 돌 지난 애기도 갈만하냐 묻는다. 흠. 이게 아닌데. 성에 안 찼다.
자리에 돌아왔다. 퇴근하고 독서실에서 풀어야 할 모의고사를 출력했다. 옆자리 계장님이 우연히 발견하길 바라며.
"대리님 이거 뭐예요?"
"아.. 제가 뭐 준비를.. 해.. 요.. 하하."
"오? 어떤 거요?"
"공인중개사요... 저란 놈이 이러고 있습니다 하하."
"어? 그거 어렵다던데?"
"오!! 어떻게 아세요? 안 그래도.."
그녀는 말을 끊고, 바로 덧붙인다.
"근데 제 친구 6개월 공부하고 땄대서 저도 해볼까 고민이에요 호호."
6개월과 3년의 빈부격차는 평등하지 않았다. 그녀의 무심함은 가벼웠고 내 집착은 무거웠다. 그녀의 질문은 새하얬고 내 열등감은 새카맸다.
나는 내 근질거림으로 좋아요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