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하면 시작도 안 했을 거란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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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 시험공부에 뛰어들기 전엔 희망이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절망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마이클 타이슨이 말했나 보다. 누구나 계획이 있다고, 처맞기 전까진.
처맞는 건 나쁜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2년 전, 시험공부의 시작을 돌이켜본다. 1차 시험은 2과목뿐인데 진도가 이렇게나 많을 줄 몰랐다. 예상치 못한 공부 스케줄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퇴근 후 식구들과 저녁 먹을 시간에,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에, 회식으로 술에 취해있을 시간에, 친구들과 치맥 할 시간에, 아내와 영화 볼 시간에 난 독서실에 가야 했다.
그럼에도 내가 확보한 공부시간으로 인강 진도를 따라가기엔 한참 부족했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여 야속했고, 시간이 많은 전업 수험생을 부러워했다. 독서실에 가는 날보다 못 가는 날이 더 많았다. 패배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환불했다면 이지경까지 오지 않았겠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는 무기력했다.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처맞는 건 나쁘다.
하지만 오히려 처 맞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내 앞길을 막고 있는 검열관 한놈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의 신중함은 그럴싸했다. 어중간하게 할 거면 시작하지도 말란다. 속내를 조금 더 들여다보았다. 시작하기도 전에 어차피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도 써먹지도 못할 거라며, 견적을 내고 있다. 조금 더 파헤쳤다. 8대 전문직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스펙 따위, 합격하면 뭐 할 거냐 비아냥 거린다. 이미 합격을 전제했고, 쥐뿔도 없는 내 눈높이는 현실감각을 배제했다.
허세를 벗겨보니 완벽주의가 있었다. 완벽주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작은 실패에도 모든 걸 물거품으로 보고 확대 해석 하는 경향이다. 겸손을 가장하여 자기 비하를 하고, 신중한 척하며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어쩌면 시작을 못하는 건 여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우리는 이미 간접적으로 최고의 아웃풋을 겪었다.
몇몇의 사례가 대한민국의 평균을 올려치고, 성급하게 상위의 기준을 일반화시킨다. 엄마 친구 아들이 연고대에 갔다는 소식은 옛날부터 자식을 주눅 들게 했으며, 블라인드에서는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과 전문직들이 서로 연봉을 견주며 푸념을 일삼고, 주변엔 (대출이 얼마나 껴있는지도 모르는) 자가와 외제차가 즐비하다. 유튜브와 각종 커뮤니티에선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의 3종 교배물이 적금 드는 사람을 벼락거지 취급한다.
저게 평균이 아닌 걸 알면서도 주기적으로 노출되면, 나의 일상은 하찮고 사소하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은 그래봤자 이 정도인데 이마저 실패한다면 나란 존재는 어떻게 될지 두렵게 된다. 통계 밖을 벗어난 익명에 기대 쓴 카더라 글쪼가리에 좀먹기 시작하면, 내 안의 검열관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떨어지면 떨어지겠거니, 시작은 그랬어야 했다. 도전은 그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