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by 산문꾼

공부에도 분명 빈부가 있다. 하지만 이 빈부는 자산의 그것과는 다르다.

나는 예전부터 부자들의 성공학 개론을 의심해왔다. ‘부’는 제로섬 게임이다. 돈 버는 법을 안다면 혼자 벌면 될 일이지, 대중에게 알릴 이유가 없다. 결국 그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조언자들이었다.


공부는 좀 다르다. 성취를 맛본 사람일수록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다. 자랑보다 진심이 담긴 공부법 콘텐츠들이 그 증거다. 나누면 배가 되는 자산, 공부는 그런 종류의 부다. 그래서 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


반면 난 결과만 파는 사람들에게 여러 번 속았다. "성공한 이들의 공통 습관",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 같은 자극적인 콘텐츠들. 그럴듯한 문장들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잊었다. 그리고 결국엔 좌절했다.

왜냐하면, 그들처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상위 1%의 공부습관, 의대생의 암기법, 뇌과학자의 학습법 같은 제목만 봐도 피곤하다. 자꾸 놓치다 보면,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도 사라진다.


공부라는 분야에서 재능은 일종의 역린이다. 건드리면 예민해지는 약점. 타고난 능력은 과대평가되고, 노력은 평가절하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노력은 감추려 했다. 공부해놓고도 일부러 못한 척, 대충 넘긴 척했다. 지금 돌아보면, 괜한 체면을 지키려 했던 유치한 방어였다.


그런 유치함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재능을 핑계 삼아, 노력조차 타고난 결과인 듯 말한다. 이 틈을 타 또다시 포장만 그럴듯한 조언들이 등장한다.


공인중개사 합격 후기를 보면 늘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다.
노베이스, 초시, 단기, 동차.

이 단어들을 조합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도전해, 단기간에, 한 번에 붙었다"는 이야기다.

완벽주의는 재능예찬론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사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작년 공인중개사 전체 합격률은 23.1%. 2차까지 한 번에 붙는 비율은 그보다도 낮다. 그러니까 ‘단기 동차 합격’은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성취다.


스크린샷 2024-04-13 191853.png Q-net 공인중개사 합격통계

그런데 왜 합격 후기들은 대부분 그렇게 보일까. 나는 생각하게 된다. 결과만 부각된 이야기들이 우리를 자극하는 건 아닐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로, 마치 그것이 평범한 일인 듯 착각하도록 말이다.


대리만족은 은근하고도 치명적인 유혹이다.

“내 친구도 몇 달 만에 붙었대.”

이런 말들이 쌓이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나를 겹쳐 보게 된다. 그리고 준비보다 기대를 앞세우게 만든다.


누군가는 로드맵을 들고 출발하지만, 누군가는 썸네일과 알고리즘에 끌려 다니다 길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이건 실제의 기록인가, 아니면 잘 만든 연출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기준 삼아 나아가야 할까.


- 2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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