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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Apr 14. 2024

ep1-2.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공부에도 분명 빈부가 있다. 하지만 공부의 빈부는 성공의 그것과는 다르다. 나는 부자들의 성공학 개론을 의심해 왔다. '부'는 제로섬 게임인데,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 혼자 벌겠지, 대중에게 알려줄 리가 있을까. 그들은 ‘가진 척하는 자’이다. 


 학습의 영역은 좀 다른 거 같다. 공부에 성취를 느껴본 이들이 베푸는 걸 꽤 많이 봤다. 유튜브에 '공부법'을 검색해 보면 많은 영상이 그들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영상들은 자랑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나누면 배가 되는 게 공부이지 않을까. 이미 교육계에서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배운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공부법을 알려주는 이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은 진짜 ‘가진 자’이다.


 난 '가진 척하는' 이들에게 속았다. 성공한 이들의 공통적인 습관, 당신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따위의 법칙들을 듣다 보면 고개를 쉽게 끄덕이지만, 돌아서면 잊혀진다. 그렇다고 '가진 자'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퇴근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 엄두를 못 낸다. 상위 1%의 공부습관, 의대생의 암기법, 뇌과학자가 말하는 효율적 학습법은 제목만 봐도 피곤하지 않은가. 


 알려줘도 못하는 나, 좌절한 만큼 자존감도 낮아진다. 공부라는 분야에서 재능은 역린(逆鱗)이다. 건드리면 예민해지는 약점이랄까. 타고난 능력은 과대평가되는 반면 노력은 평가절하된다. 학창 시절,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 시험기간에 공부를 적게 한 척을 했다. 열심히 공부해 놓고 깜빡 잠들어서 시험 범위를 하나도 못 봤다고, 남들 앞에서 일부러 투덜거리던 내 모습이 촌스럽다. 


 있어 보이고 싶은 생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여전히 재능을 운운하며, 노력마저 재능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이때다 싶어 '가진 척하는 자'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공인중개사 합격 후기에 종종 보이는 단어가 있다. 노베이스, 초시, 단기, 동차. 단어를 연결해 보면 대충 이런 뜻. 노베이스로 초시에 (그것도) 단기로 (심지어) 동차 만에 합격했다는 말. 완벽주의는 재능예찬론자의 흥미를 돋울만한 찬사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미 최선을 알고 있다. 이렇게 합격한 이들은 통계상 어느 구간에 속해 있을까. 일단 합격률 자체가 작년엔 23.1% 였다. 1차를 합격하여 2차 응시자 한 자도 33% 수준밖에 되질 않는데, 단기에 동차까지 라면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지위 아니겠는가. 


Q-net 공인중개사 합격통계


 하지만 블로그의 합격후기는 완벽주의자들로 가득하다. 대다수가 아닌데 왜 대다수인 거처럼 보일까. 난 의심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마케팅 직원들이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추켜세우는 게 아닐까. 대리만족은 매우 위험한 유혹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몇 달 만에 붙었다는 걸 운운하다 보면, 마치 나도 그들과 동급인 듯 착각하기 때문이다. 


 친구 자랑을 통해서 얻는 건 그들의 높아진 콧대뿐이다. 난 이걸 유사성공이라 부르겠다. 공인중개사 시험공부에 뛰어들기 전엔 희망이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절망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마이클 타이슨이 말했나 보다. 누구나 계획이 있다고, 처맞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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