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완벽주의와 평타치의 허상

어중간하면 시작도 안 했을 거란 헛소리

by 산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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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 시험공부에 뛰어들기 전엔 희망이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절망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마이클 타이슨이 말했나 보다. 누구나 계획이 있다고, 처맞기 전까진.



2년 전, 시험공부를 시작하던 때가 떠오른다. 1차 시험은 고작 두 과목이었지만, 진도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계획은 금세 틀어졌고, 공부는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이 돼버렸다. 퇴근 후 가족과 보내던 시간,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시간, 그 모든 시간 대신 나는 독서실에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만으로도 부족했다. 인강 진도는 늘 한참 뒤처졌고, 독서실에 못 가는 날이 더 많았다. 전업 수험생이 부러웠고, 주어진 시간이 야속했다.


차라리 일찍 환불하고 접었으면 좋았을까. 그런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무기력해졌다. 생각보다 빨리 무너졌고, 생각보다 깊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제야, 진짜 문제를 마주했다.


내 안에는 조용한 검열관 하나가 있었다. 늘 신중함을 내세우며, 어설프게 할 거면 아예 시작도 말라고 했다. 자격증을 따봤자 어디에 쓰겠냐며 계산은 이미 끝냈고, 8대 전문직 앞에서 감히 명함도 못 내밀 걸 알았다. 공인중개사라는 타이틀은, 내게 ‘없는 사람의 최선’처럼 느껴졌다.


시작도 전에 합격을 가정하고 먼저 비웃는 그 말들. 자기비하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완벽주의였다. 완벽주의는 겉으론 열심히인 척하지만 실은 실패할 확률부터 따져보다, 시작도 못 하게 만든다. 작은 실패도 끝이라 여기고, 겸손을 핑계 삼아 도망친다. 가능성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방식으로.


돌아보면, 우리는 자주 ‘최상의 결과물’에만 노출된다. 엄마 친구 아들, 블라인드의 연봉 비교, 유튜브 속의 삶들. 몇몇 사례가 평균을 올려치고, 그게 곧 기준이 된다. 적금만 들어도 ‘벼락거지’라며 손가락질하는 세상에서 나의 하루는 점점 작고 초라해진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인데, 그마저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익명의 글과 숫자들에 잠식되기 시작하면, 내 안의 검열관은 점점 더 많아지고, 그 강도는 점차 더 엄격해진다.


다시 생각해본다. 떨어지면, 그냥 떨어질 일이다.


시작은 그랬어야 했다.

도전도, 그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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