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이 선택지일때 늘 실패하는 이유
나는 큰 걸 바란 게 아니었다. 하루 한 끼 샐러드, 일주일에 세 번 러닝머신. 영어도 그냥 여행용 표현 정도. 정말, 바란 건 이 정도였다.
하지만 새해만 되면 마음이 괜히 불탔다. 식단, 운동, 영어, 독서. 체크리스트는 화려했지만, 일주일을 넘긴 적은 거의 없다. 완벽주의가 고개를 들고, 나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거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관성은 무섭다. 딱 하루 안 했을 뿐인데, 다시 시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결국 내 자기계발은 늘 시작만 요란했다. 흐지부지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보면 학습된 무기력이 또 말을 건다.
‘에라 모르겠다, 내년에 하지 뭐.’
그리고 나는 목욕탕으로 도망친다.
냉탕 앞에 섰다. 발끝으로 물을 간다. 오른발, 왼발, 손, 팔. 움찔대는 모습이 꼭 자기계발 앞에서의 나 같다.
운동 중엔 책 생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는 다음 시간표를 걱정했다. 뭐든 해보겠다고는 했지만, 정작 그 무엇에도 푹 빠져본 적은 없다.
냉탕은 늘 차가웠다. 찬물의 충격은 잠깐인데, 문제는 그 한 번을 도저히 못 들어간다는 거다. 나는 그 문턱에서 매번 되돌아섰다.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그제야 인정했다. 요란한 계획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그냥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우나에서 땀 좀 빼고, 팔이나 좀 휘저어보다가, 심호흡 한 번 하고 쓱 들어갔다.
비로소 나는 ‘자기계발’이 아니라, 그냥 필요한 공부를 시작했다. 공인중개사 시험. 딱 하나만 하기로 했다.
예전엔 뭐라도 해보겠다고 들어간 냉탕이었다면, 이번엔 딱 할 일 하나 정해놓고 들어간 거였다. 영어, 독서, 다이어트는 잠시 내려놨다. 시간표에 쫓기지 않으니 오히려 버틸 만했다.
이제는 발만 담그지 않기로 했다. 들어간 이상, 버티는 연습을 했다. 공부는 내 하루의 우선순위가 됐다. 자기계발은 눈치 보며 시작했지만, 이건 그냥 해야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냉탕에 평생 앉아 있을 순 없다. 목욕탕에 온 진짜 이유는 씻는 거니까. 머리 감고, 비누칠하고, 새 물로 헹구는 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세상엔 많았다. 매월 도래되는 대출금의 원리금 도래기 ,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는 일, 가족보다 오래 마주치는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이해와 오해 사이를 오가는 배우자. 이 모든 게 공부보다 먼저였다.
냉탕에 오래 버티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결국엔 나와야 한다. 씻는 게 더 중요하니까. 자기계발은 잠깐 현실을 잊게 해주는 피난처지만, 그 틈에서 또 다른 할 일을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직장인의 공부란 그런 거다.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일. 발끝만 적셔도 안 되고, 너무 오래 앉아 있어도 안 되는 일. 현실과 이상 사이, 그 어정쩡한 온도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