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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에 오래 앉아 있는 건 멋진 일이지만, 결국 씻는 게 더 중요했다. 자기계발은 잠시 현실을 잊게 해주는 피난처였지만, 가끔은 해야 할 일들 틈에서, 할 일을 또 만들어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온탕에 들어갈 땐 각오도, 심호흡도 필요 없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린다. 처음엔 조금만 있으려고 했지만, 금세 눕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공간. 그게 온탕이다.
스마트폰을 꺼낸다.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유튜브 쇼츠로, 또 틱톡으로 간다. 하나하나 짧고 자극적이다.특별히 생각할 것도 없다.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이고,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온탕에 오래 담가둔 몸이 느슨해지듯, 정신도 흐릿해진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든다.
퇴근길, 다들 집으로 향할 때 나는 독서실로 간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근 듯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알고리즘 속을 떠돈다. 공부하려던 마음은 있었지만, 손은 이미 딴 길로 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흘려보냈을 자투리 시간들이 요즘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잠깐이라도 책을 펼쳐야지 다짐하면서도, 그 짧은 틈을 붙잡은 건 늘 스마트폰이다. 손가락은 알고리즘 위를 떠돌고, 정신을 차리면 몇십 분이 사라져 있다. 가만히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뿌듯해하던 나는, 실은 온탕 속에서 나른하게 조지고 있었던 거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어서, 일단 하나씩 끊어보기로 했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고,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바꿨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의지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의 알림 시스템은, 내 무의식을 정교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 알림에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단톡방 메시지가 100개 넘게 쌓이면 눌러보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의 전화, 카드 결제 알림,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 쇼핑몰 세일... 전부 작은 알림이지만, 나를 서서히 온탕으로 끌어당긴다.
반면에 민법 조문은 분명 한글인데도, 머릿속에 걸리지 않는다. 읽고 또 읽어도, 문제를 풀면 처음 보는 것 같다. 익숙하지도 않고, 직관도 통하지 않는다. 공인중개사 공부는 냉탕에 들어설 때처럼, 매번 결심이 필요하다.
공인중개사 공부와 스마트폰 알림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리듬과 감각을 가진다. 한쪽은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느리고, 복잡하고, 시간이 걸린다. 두 세계는 동시에 존재하지만, 겹쳐지지 않는다.
나는 그걸 모르고, 공부를 하며 온탕과 냉탕을 계속 오갔다. 나는 그걸 함께 붙잡고 버텨낼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진도를 못 따라가면 불안했고, 그 불안을 달래려 또 카톡을 확인했다.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자기기만 속에 빠졌다. 냉탕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온탕에서 편히 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물가에 맴돌았다.
두 세계는 함께 있었지만, 엉켜 있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양쪽을 동시에 움켜쥐려 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공부는 흐릿했고, 휴식은 찜찜했다. 끝내 어느 쪽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경계만 서성였다.
이젠 경계를 나눈다. 앉을 땐 제대로 앉고, 쉴 땐 확실히 쉰다. 공부할 땐 휴대폰을 끈다. 알림을 끄고, 자투리 시간에도 피드를 넘기지 않는다. 반대로 쉴 땐 알람을 맞추고, 마음 놓고 영상을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쉬는 동안 죄책감을 갖지 않는 일이다.
두 세계는 함께 있지만 서로 닿지는 않는다. 그러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