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문꾼 May 19. 2024

ep4. 온탕과 자기 계발의 상관관계

이전 화

 냉탕에 진득이 오래 앉아있는 건 멋진 일이지만 씻는 게 더 중요했다. 공부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이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 들 사이에서 할 일을 또 만든 걸 보면, 빛 좋은 개살구이기도 했다.



 온탕은 어떨까. 온탕은 냉탕과 결이 좀 다르다. 따뜻하고 나른하다. 냉탕에 들어갈 때처럼 팔 벌려 뛰기 30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 긴장할 필요도 없고, 노력할 일도 없다. 이런 안온함은 누워서 핸드폰을 만질 때의 사정과 비슷하다. 나는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쇼츠와, 틱톡을 번갈아가며 튕긴다. 


 남들은 퇴근하고 집에 갈 때, 독서실에 가는 내가 기특하기도 하면서도 칸막이 책상에 앉아 정자세로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넘기는 내가 야속하다. '나는 왜 이것들을 통제하지 못하는가.' 자책하며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는다.  


 세상엔 재미진 게 참 많다. 어떤 분야든 재미를 느끼려면, 어느 정도 반열에 들어야 한다. 운동이든 음악이든 기본기를 익혀야 하고, 충분히 져본 적이 있는 자만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재테크로 돈 좀 벌어보려면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한다. 재미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30대 직장인, 유부남, 애기 둘 있는 아저씨에게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 자연스럽게 단기적인 재미를 좇고 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오늘도 그럭저럭 유튜브 쇼츠만 넘겼다.  


 공부를 시작하니 시간이 생겼다. 자연스레 재미의 역치도 낮아졌다. 난 뽀로로가 되었다. 노는 게 제일 좋아졌다. 시험기간은 원래 그런 거 아니겠는가. 마치 졸업앨범이 시험기간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것처럼 그 시간엔 무얼 해도 즐겁다. 여기서 자칫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귀한 시간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도배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음먹고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권을 중단했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비공개로 해놓았다. 한 달 만에 다시 되돌려 놓은 걸 보면 그게 문제가 아닌 거 같다. 온탕의 범주를 스마트폰 전체로 확대해 보았다. 


 휴대전화의 알림에 난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 단톡방 대화가 100개가 넘게 쌓여있으니 눌러보지 않을 수가 없다. 

- 분유를 주문하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나 까먹을까 해서 즉시 처리한다. 

- 카드대금 납부도래 문자를 보고 이 계좌에서 저 계좌로 돈을 옮긴다. 

- 라코스테 셔츠를 70%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팝업을 눌렀다. 하지만 내 사이즈는 없다. 

- 전세와 자가의 기로에 놓인 나에게(어차피 모든 게 대출이지만) <건설경기 악화로 인한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라는 썸네일은 클릭을 안 해 볼 수가 없는 기사다. 


 급한 일, 급하진 않은데 중요한 일,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데 언젠간 필요할 거 같은 일. 온탕이다. 민법 조문은 분명 한글인데 잘 읽히지 않는다. 문제를 풀어보면 여전히 처음 본 듯하다. 냉탕이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는데, 휴대전화의 진동이 느껴지는 상황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둘은 따로 논다. 직관적인 느낌대로 나열해 봤다.


온탕 : 빠름, 단순함, 직관적, 편함.

냉탕 : 느림, 복잡함, 논리적, 번거로움.


 냉탕과 온탕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이 둘은 양립할 수는 없어도 동시에 존재한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떨어진 해를 돌이켜본다. 그 당시에 난 온탕과 냉탕에 몸을 동시에 담그고 있었다. 이걸 인지하지 못해 공부하는 매 순간이 스트레스였다.


 그러니까 나에게 절대선이란 시험공부였다. 모든 걸 다 배제하고 공부를 우선하는 게 이상이었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항상 주눅 들어 있었다. 쉬는 시간에 얼마든지 쉴만했는데도 유튜브를 보면서 이럴 시간이 있겠느냐 벼랑 끝에 날 몰아세웠다. 어차피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지 않는데도 말이다. 공부하는 와중에도 계획대비 부족한 달성률에 불안해했다. 그러면서 사이사이 카톡 답장을 하며 또 한 번 자책했다. 


 이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도 냉탕과 온탕을 반복한다.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 냉탕에 들어갔다. 궁금해서 다시 켰다. 이번엔 추워서 온탕에 들어왔다. 하지만 원칙을 세웠다. 동시엔 담그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