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부로 나누어 쓰겠습니다.
감히 공부 얘길 하자니 막막하다. 나에겐 자격증도 합격 스토리도 없다. 설령 언젠가 하나쯤 따낸다해도, 요즘 학업판에서 그정도론 명함도 못낼 거 같다. 결국 공부법을 당당히 말할 날은 안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삐딱하게 말하려 한다. 이 글은 할 말 없는 자의 질투다.
공부는 성공과 닮았다. 오늘을 저당 잡아 먼곳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슬프게도) 과정이란 건 늘 결과가 있어야만 인정받는다.
그런의미에서 공부얘기를 하려면, 먼저 성공 얘기부터 해야 할 거 같다.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성공은 돈이다. 돈을 가진 자에겐 마이크가 주어진다. 그들이 입애 달고 사는 자수성가 서사는 뻔하고, 촌스럽고, 익숙하다.
“나는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하루 세 시간만 자며 주식과 부동산을 공부했고, 스마트스토어 창업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당신은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인데 왜 그 모양이냐. 누구나 할 수 있다. 도전해라.”
그 말이 너무 그럴듯해서, 나도 한 때 ‘성공’이란 상품을 샀다. 강의하나에 백만원. 그 정도야 미래에 대한 투자 아닌가. 포장을 뜯자 희망이 있었고, 펼쳐보니 허황이었다.
로또만 당첨되면 포르셰를 탈 수 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포르셰, 아무나 못 탄다. 그럴만한 부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누군가의 수익은, 누군가의 손실을 전제로 했다. 갭투자 뒤엔 깡통주택이,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광고뒤엔 코인게이트가 있었다. 내가 본 세상은 그랬다.
성공을 파는 사람들은 사실 성공을 팔지 않았다. 그들은 ‘유사성공’을 팔았다. 정확히 뭐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굳이 말하자면 오픈런을 뚫고 산 가방이 남의 부러움을 살거라는 기대감 이랄까.
‘가진 척 하는 자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할 수 있어.”
그들은 명품 소비를 욕하면서, 그 명품을 갖고 싶은 욕망을 ‘경제적 자유’같은 이름으로 바꿔판다. 같은 걸 팔면서 자기는 다르다고 믿게 만든다. 그걸 믿은 나는, 그들에게 돈을 냈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수록 그들은 ‘가진 자’가 되어갔다.
그렇게 ‘성공’을 경험하고 나니, 어쩐지 ‘공부’도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공부도 ‘성공’의 허상을 닮았다. 모두가 비슷한 꿈을 꾸지만, 누구나 다 이룰 수는 없는. 누군가는 이미 도착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헤맨다.
그럼에도 나는, 그 흔들리는 사람들이 쓰는 이야기를 믿는다. 화려한 성공담보다, 더듬거리며 걷는 길 위의 솔직한 기록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 글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닿기를 바란다. 덜 속고, 덜 흔들리며 걷는 자기만의 길 위에.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