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공부라는 이름으로 불안에 중독됐다

by 산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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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에서 문제풀이 위주의 공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형편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공부를 한 게 아니라 불안에 끌려다녔다.



그래서, 불안은 정말 나쁜 걸까?

과정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그저 야속할 뿐이다. 마음을 조이면서도, 이상하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결국 용의주도하지 못한 나는 그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고, 친한 동료에게 푸념을 흘렸다. 사실, 직장인이 공부한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는 건 일종의 금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괜히 잘난 척처럼 보일까 봐, ‘그래봤자 뭐가 달라지냐’ 는 비아냥을 들을까 봐,
혹은 일은 뒷전이고 공부만 하는 헛똑똑이처럼 보일까봐,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히 숨긴다.


하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그 푸념 속에는, 진심 반, 계산 반의 감정이 얽혀 있었다. 겉으론 “진짜 공부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이었지만, 그 안에는 ‘퇴근 후에도 자기계발하는 나, 좀 괜찮지 않냐’는 묘한 자랑, ‘요즘 스트레스 많으니까 어지간하면 일할 때 나 건들지 마’라는 무언의 경고, 그리고 무엇보다, ‘조만간 내가 휴가를 쓸 테니 넌 미리 알고 있어야 해’라는 정교한 보험까지 깔려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댓가가 있는 법. 시험이 다가올수록 불안은 복리에 복리를 낳았다. 이전 화에서 말했듯, 나는 9번의 모의고사에서 전부 패배했다.

"공부한다고 떠들던 내가 떨어지면 어쩌지?" 그 생각이 수치심처럼 밀려왔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데, 나는 벌처럼 앵앵거리며 “저 공부합니다!” 하고 떠들었으니.자업자득이었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절대평가다. 과락 없이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 겉보기엔 관대해 보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인강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절대 평가도 변별력은 필요합니다. 출제위원들도 그걸 의식하고 합격선에 몰리게 문제를 내요. 결국 한두 문제 차이로 아쉽게 떨어지고, 또 겨우 합격하죠.”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절대평가는 버리면 됩니다. 중요한거만하면 돼요.”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합격률 25%, 시험까지 한 달 남짓. 나는 여전히 합격선을 넘지 못하고 출렁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공부를 안 했으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정말 열심히 했기에, 더욱 부끄러웠다.


그때, 6월 모의고사 이후, 민법 선생님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엄청난 지식을 요하진 않아요. 하지만 과목 수가 많고, 범위가 생각보다 훨씬 넓습니다. 진도를 다 따라가기도 벅차고, 한 번 본 걸 또 까먹기 일쑤라 반복이 필수죠. 결국 이 시험은, 마지막 순간까지—시험 전날 밤까지—얼마나 끝까지 붙들고 있느냐의 싸움이에요.”


지금 점수가 좋다고 우쭐할 것도, 나쁘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공부는 체력이고, 불안은 원동력이었다.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9번이나 떨어진 내 멘탈은 이미 탈탈 털렸지만, 그 덕분에 벼락치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시험 마지막 일주일, 나는 한 번 더 과감하게 배팅했다.


“저 4일간 연차 쓸게요.”


이제 우리 사무실 모든 직원이 알았다. 내가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요란하게 연차까지 쓴 사람이, 보기 좋게 떨어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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