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정치는 얼마나 고결할 수 있을까

영화 <콘클라베> 진흙 위의 교황을 마주하다

by 산문꾼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콘클라베』가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선거 과정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명작을 보며 호사를 누리게 되었는지, 신이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었다.


‘사람답다’, ‘인간미 있다’라는 말은 따뜻하고 정겹지만, 나는 유독 그 온기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이 지닌 따뜻함보다는, 그 말이 전제하는 냉혹한 현실의 그림자에 더 먼저 시선이 갔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답다’라는 표현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지극히 성스러운 종교의 이상 세계 안에서는, 오히려 ‘사람답다’는 말이 흠처럼 느껴진다. 그 말이 전제하는 현실—결핍과 한계, 욕망과 나약함—은 그 세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각박한 현실에서 ‘사람답다’는 말은 그저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 말은 아름답지만, 그 말이 빛날 수 있다는 건 애초에 세상이 어둡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표현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따뜻하다기보다, 애처롭게 느껴졌달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선 ‘사람답다’는 말이 결점처럼 작용한다. 완전하고 순결한 세계에 인간적인 나약함이 작은 얼룩처럼 묻어나는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그런 ‘사람다움’을 정교하게 비춘다.


교황이 갑자기 죽었다.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추기경들이 모인다. 과반수인 2/3 이상의 표를 받은 이가 교황이 된다.


가장 고상하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을 듯한 종교인들의 선거는 과연 어떨까.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보는 정치판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진흙탕 싸움이다. 후보 중 마땅히 뽑을 만한 인물이 없다. 최선이 없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고, 출신 지역과 인종,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배제한다.


누구나 입으로는 대의와 명분을 떠들지만, 결국은 자기 이익을 위한 기만적인 앞가림에 불과하다. 권력을 얻기 위해 상대를 음해하고, 사실에 적당히 거짓을 섞어 본질을 흐리고 왜곡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매력이다. 절대 그럴 리 없을 것 같던 인물들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기에, 긴장감과 스릴은 배가 된다. 문제는 이 모순이다. 관객은 한 번 배신당한 셈이다. 가장 고결한 세계에서 가장 추한 민낯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배신을 ‘반전’으로 엎어버린다. 사람다움이 한낱 결점처럼 보였던 그 점 하나조차, 이 세계의 광활함과 숭고함 안에 녹여낸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어떤 고결함을 본다. 그건 설득이라기보다 설득 이상의 감각. 그러니까, 숭고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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