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역을 맡겠습니까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

by 산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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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배치했더니, 방심할 수가 없네요. 자칫하면, 뭐가 뭔지 헷갈릴 수 있거든요.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두 가닥의 플롯으로 얽혀있죠. 그러니까 배우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연기하는 수감자들을 연기하는데, 한가닥은 현실이고, 다른 한가닥은 연극입니다. 다행히 복잡하진 않습니다.



연극을 하는 수감자들은 살인, 폭력, 마약과 관련있는 범죄자들입니다. 그들은 시저의 암살을 공모하는 과정을 연기합니다. 줄거리를 이해하고, 대본을 외우고, 감정을 싣고, 대사를 뱉습니다. 대의와 명분을, 음해와 모략을, 그리고 우정과 배신을. 일종의 그래왔던 삶을 재연(再演 )하는 순간이죠.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새부터 연극과 현실 사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 배신을 연기하며, 과거 시절 자신의 배신을 괴로워하고, 아첨꾼을 연기하는 상대역을 향해 평소에 억누른 감정을 배설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긴 연습과정이 멋진 극을 통해 펼쳐집니다. 연극과 영화, 장르가 결합하는 순간이네요. 편집할 수 없는 연극(#줄리어스 시저)의 특성상 최고의 순간을 연출하기 위해, 수감자들은 온 힘을 기울여왔죠. 이를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영화(#시저는 죽어야 한다)라는 것.



극은 성공했습니다. 환호화 갈채를 받고 돌아온 자들의 괴리감은 엄청나죠. 라틴어를 썼던 조상들이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며 남겼을 것 같은 문구가 생각납니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모든 동물은 섹스 후 가장 우울하댔나. 그러니까 절정을 찍은 후의 고독이 참으로 야속합니다.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다네요. 애석함이 느껴진걸 보니, 이게 바로 페이소스가 아닐까요.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보고나니 오늘 하루가 감옥이 되었네요. 역할 놀이에서 내가 맡은 배역이 몇 개 없다는걸 알았거든요.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상상하는 회사원 역,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남의 피드나 넘기고 있는 염탐꾼 역, 나도 한 번 유튜브나 해보려니 막연함을 꿈꾸는 프로 허황꾼 역 정도랄까요. 이 헛헛함을 예술로 채울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다른 배역을 맡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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