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며칠 후 동아리 실에서 서경이를 만났다. 얼굴이 핼쑥해져서 반쪽이 되어 있다.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는 건가?
서경이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며 마로니에 나무 아래 벤치로 나가자고 한다. 실내 공기가 너무 답답하다며.
얼마 전 가족 모임에 경수 선배를 데려갔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대학 교수인 서경이 아버지는 유학을 다녀오셔서 그런 건지 개인적인 성향인 건지 당시 기준에 비추어 보면 생각이 꽤 트여있는 분이었다. 서경이가 어릴 때부터 딸에게 부탁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언제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가족에게 인사시키고 집에도 데려와서 종종 식사도 함께 하면서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경수 선배는 그 당시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서경이는 선배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본인 생일에 집에서 밥 한 끼 먹는 거니 그냥 와서 밥 먹고 가라고 가볍게 말했단다.
꽃 한 다발 사들고 편한 맘으로 동아리 후배 집에 밥 먹으러 온 경수 선배는(MBTI 성향은 E 보다는 I에 가까울 듯) 온 가족이 다 모여 있는 걸 보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는 거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집 밖으로 나온 선배는 서경이에게 우영이를 좋아한다고 고백했고, 그 후로 한동안 서경이는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해서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고 고백했다.
대체 저한테 다들 왜 이러시는 거예요?
얼마 후 경수 선배는 후배들이 불러 주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논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경이는 짝사랑의 상처를 씻어 내려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우영이는 더 큰 물에 가서 놀겠다며 반수를 선택해서 학교 캠퍼스를 떠나갔다. 나는 그 해 새내기 1년을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