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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hwa Sep 19. 2024

손흥민 vs 정해인

도파민과 엔돌핀을 주는 사람들

  미스터 트롯이 전국을 강타하던 시절, 엄마 집에 가면 내게는 TV 채널 선택권이 없었다. 아빠가 계시던 날에는 킥복싱을 봐야 했고 엄마가 리모컨을 장악하자 이젠 날마다 트로트를 들어야 했다. 발라드는 좋아하지만 트로트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어쩌다 뉴스라도 시청하려고 채널을 돌리면 엄마는 싫어하셨다. 임영웅이 노래만 들어도 엄마는 저절로 행복해진다면서 오매불망 영웅 바라기 되셨다. 자식만 기다리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영웅이 참 감사하다. 엄마의 큰 기쁨은 누가 뭐래도 임영웅이다!



  몇 년 전에 먼저 은퇴한 선배랑 가끔 통화를 해서 "언니 요즘 뭐해요?" 하고 물어보면 공정무역 관련 수업을 하거나 밥 퍼 봉사단체에서 밥을 푸러 다닌다고 하신다. 봉사활동 하러 다니면서 소소한 기쁨을 누리시는데, 이 선배의 크나큰 기쁨은 따로 있으니, 어느 날 싱어게인에서 이승윤의 노래를 듣고 난 뒤에 그의 팬이 되어 전국 어디라도 승윤이 콘서트가 있는 날은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신다. 여태껏 시부모님을 모시고 30년이 넘게 일하면서 남편과 세 아들을 케어했는데, 은퇴 후에 갑자기 빈둥지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모든 것들이 시들해질 때 승윤이 노래를 들으면 근심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그렇게 충만할 수가 없다고 하신다. 승윤이 팬클럽에 가입해서 회원들과 정모도 하고 새로 나온 CD와 굿즈를 구매하며 콘서트 표를 예매해서 전국을 여행하는 기쁨으로 삶의 활력을 찾으셨다.


  10대와 20대 시절엔 이문세와 이승철 콘서트를 한 번씩 가다가 임재범의 노래를 듣고 난 후에는 한동안 그의 노래들에서 위안을 얻곤 했다. 딱히 열성 팬이 된 적이 없고 덕질도 하지 않았는데, 작년부터 EPL 축구를 보면서 손흥민의 경기를 실시간 생중계로 보게 된 이후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운동은 걷기만 좋아하고 공을 가지고 하는 모든 경기에 운동신경이 없는 나로서는 축구는 월드컵 때만 보는 한시적인 경기였었다.


  그러나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인 소니가 뛰는 EPL 경기는 보는 나로 하여금 삶의 에너지와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두 시간 가까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쉬지 않고 윙어와 스트라이커 사이를 오가면서 때로는 팀의 수비수가 되기도 하고 상대 골키퍼를 압박해서 공을 순식간에 뺏어와서 골망을 가로지를 때의 그 희열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10년째 토트넘의 레전드로 충성을 다하는 소니가 내년 6월에는 재계약하지 말고 우승컵을 들 수 있는 다른 팀으로 이적했으면 좋겠다. 맨시티나 첼시 리버풀 중 한 팀으로 이적해서 은퇴하기 전에 소니가 우승컵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싶다!


  EPL 경기가 없는 날에는 가끔 넷플릭스를 보는데 D.P. 에서 정해인의 연기가 신선하다고 느끼고 있던 차에 <엄마 친구 아들>에서 정소민과 케미가 참 좋았다.  정해인 나오는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고 있는데 볼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베테랑 2>를 보고 왔는데 서도철 형사역의 황정민은 미친 연기력을 말할 것도 없고, 박선우 역의 정해인은 연기에 물이 올랐다고 해야 할까? 저녁을 먹으며 둘째 아들이 묻는다. 

" 엄마 손흥민과 정해인 중에 누가 더 좋아?" 

"엄마는 형이랑 나보다 요새 소니랑 해인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애?"

"둘 중 한 명을 못 고르겠는데... 요즘 엄마에게 엔돌핀과 도파민이 돌게 해 주는 사람들이라서 말이야~"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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