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목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도면 보는 법이 어렵고 전기톱 소리도 무섭더니 이제 두어 달 지나가면서 소리에 적응이 되어간다. 미송나무로 벤치 의자의 상판을 마감하면서 사포로 문지를 때마다 더 부드러워지는 촉감을 느끼게 되었고 오일도 얇게 여러 번 발라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에서 우러나오는 깊이감을 알게 된다.
여닫이 서랍장은 레드파인 나무로 만들었는데 문짝 두 개에 경첩을 달면서 문에서 비치는 핑크베이지의 나무 속살을 볼 때마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중에 손녀딸을 보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완성된 두 개의 작품을 오늘 집에 데려와서 어루만지는 내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졌나 보다.
작은 아드님 왈 " 엄마! 어째 형이랑 저보다 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시네요!" 당연하지, 9월과 10월 그 무더운 여름날에 더위 먹어가며 대패질하고 사포질로 광을 내며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이 목공의 기쁨이 뭐냐면 열 번 사포질 한 것과 백 번 사포질 한 노력이 그 결과물로 정확히 아웃풋이 나오는 거다. 내 노력을 배신하거나 실망시키지도 않고. 하지만 어디 자식 키우는 것이 내 노력과 정성으로 다 되는 일인가? 부모가 쏟은 인풋의 50%만 아웃풋이 나와도 잘한 거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다음 주부터는 세 번째 작품인 침대 옆에 놓을 미니 협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오리나무가 주는 나무의 질감이 있는데 벌써부터 정이 들기 시작한다. 도면을 본 아들은 자기 침대 옆 협탁으로 사용하고 싶다며 나를 치켜세우는 중이다. 목공 1급 기능사가 만든 작품 같다면서... 그래 너 하는 거 봐서!
음 거실 서재 옆에 자리를 잡아주니 그럴싸하네!
내가 만들었는데 내가 사랑에 빠지네~
이렇게나 이쁠일인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음에 쏘옥 든다!
(음 인풋 대비 아웃풋이 훌륭하구만)
손잡이가 여럿 이사 오면서 떨어져 보기 싫었는데,
철물점에서 모양이 같은 손잡이를 사 와서 볼트를 조여주니 새것처럼 감쪽같다.
몇 달간 목공을 하면서 회원들과 친목도 다져지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1주일에 한 번 월요일 오전에 모여서 목공 동호회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5명 이상 회원이 꾸준히 활동하게 되면 공단에서 장소와 강사비도 지원해 준다고 하니 안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점점 욕심이 커지면서 내년에는 6인용 원목식탁에 도전해 보자는 회원도 있고 서재에 오래 두고 쓸 우드슬랩 책상을 만들어 보자는 회원도 있으니 내년에 나올 작품이 더 기대가 된다.
정신없이 육아하며 일하느라 30년을 보내고 나니 지금의 이 여유로움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낮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고 서점에 가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랑 메르 님의 <1%를 읽는 힘> 좀 읽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