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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hwa Sep 15. 2024

목공 아카데미의 기쁨

호모 파베르와 호모 루덴스 그 중간 어디쯤

  8월 초 동유럽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카카오톡이 울린다. 작년부터 기다렸던 은퇴한 공무원을 위한 목공 수업에 신청하라는 반가운 메시지가 뜬다. 봄에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자마자 목공아카데미에 전화를 했더니 3개월간 주 1회 4시간 하는데 100만 원이라고 한다. 원래는 60만 원을 정부에서 보조하고 40만 원을 개인부담하는 건데, 이번 정부 들어서면서 예산 삭감으로 지원이 없어서 프로그램이 폐강되었다는 거다.



  월, 화 주 2회 2개월 프로그램인데 원목 재료비 48만 원을 내면 2개월 후에는 2단 협탁, 여닫이 수납장, 벤치형 의자 이렇게 세 개의 원목 가구가 완성되는 거다. 잽싸게 신청을 하고 2주를 기다렸더니 답신이 왔다. 월요일 수업은 가능하나 화요일은 신청자가 많아서 랜덤으로 추첨한 결과 탈락이라는 거다. 아쉽지만 월요일 수업 당첨된 것만 해도 기뻤다. 그런데 1주일 후에 담당자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재료비가 부담스러운 신청자가 접수를 포기해서 빈자리가 생겼다고... 바로 재료비를 계좌이체하고 목공 아카데미가 시작되었다.

  첫 수업날 가보니 여자는 나 혼자고, 모두 남자 회원들이다. 그나마 메인 쌤이 남자이고 보조 쌤이 여자분이 계셔서 어색함을 누르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론 수업 시간에는 대답도 제일 잘하고 씩씩했지만, 막상 톱을 사용해서 재단을 하는 수업이 시작되자 전기톱 소리에 주눅이 들었다.

  첫 작품은 여닫이 수납장이라서 크기에 맞게 도면을 보고 7장의 원목나무를 치수에 맞게 재단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전기톱의 크기와 소리가 엄청나서 나는 공포영화 <지난여름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이 생각나면서 그 톱에 내 손을 다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인간은 도구를 이용해서 뭔가를 만드는 [호모 파베르]와 놀이하는 유희적 인간인 {호모 루덴스}에서 진화해 왔다. 은퇴 후에 내 손으로 만드는 가구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식탁용 테이블과 평상형 침대 프레임도 만들고 뭔가 잔뜩 상상 속에서 나는 목공용 앞치마를 두르고 귀 뒤에 연필 하나 꽂은 채로 목공 디자이너 흉내를 내고 싶었나 보다. 현타가 세게 왔다. 

  톱 사용법과 안전 교육이 끝나고 회원이 6명이니 2인 1조로 팀을 만들어서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파트너를 정하라고 하셨다. 작업대가 가까운 회원과 파트너가 되어서 재단한 나무를 사포로 밀고 목공 본드를 이용해서 결이 예쁜 쪽을 겉면이 되게 붙이고 전동드릴을 사용해서 구멍을 뚫고 나사못을 박은 다음에 못 들어간 자리에 나무못을 박아서 톱으로 잘라내는 과정을 둘이서 혼신의 힘을 다해 해냈다.

  그런데 이 날 날씨가 36도였고(체감 온도는 38도가 넘는다) 톱밥 먼지로 인해 에어컨을 못 틀고 선풍기 두 대만 돌리면서 작업 시간이 두 시간이 넘어가니 내 몸은 슬슬 더위를 먹기 시작했다. 아! 일사병이 이렇게 걸리는구나... 두 분 쌤과 다섯 회원들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잠시도 쉬지를 않는 거다. 난 오지랖을 떨며 제발 물 한 잔 마시면서 5분이라도 쉬면서 하자고 했지만, 이분들은 목공의 기쁨에 푹 빠져서 내 말 따위는 들리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나만 10분 정도 쉬고 그날 해야 할 작업 분량을 마무리했는데, 호모 파베르와 호모 루덴스 그 어디쯤에서 희열을 느끼며 도파민과 엔돌핀이 마구 솟아나는 체험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가구도 돈 주고 사는 게 제일 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 남편과 아들에게 그날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안쓰럽다는 듯이 혀를 쯧쯧하더니, "카드 줄 테니까 그냥 맘에 드는 가구로 사!" 우리 집 세 남자는 똥손이다! 힘들지만 망치와 톱과 드릴을 써가며 만드는 기쁨도 있는 건데... 이건 세상에 하나뿐인 여닫이 수납장이라고...


  두 남자는 밥 먹다 말고 내 얼굴 한 번 더 쳐다보더니, " 그놈의 세상에 하나뿐인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눈도 침침, 어깨랑 목은 뻣뻣! 더위 먹어 일사병 걸릴 뻔하고..." 그래도 재밌는 걸 어쩝니까? 별로 재주는 없지만 호모 파베르와 호모 루덴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내 상상 속에서는 이미 벤치와 수납장과 협탁이 완성되어 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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