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흙길을 걷는 기쁨
마지막 직장에서 엇비슷하게 은퇴를 한 우리 넷은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맨발 걷기였다. 매주 어느 하루 요일을 정해두고 황토 흙길이 좋기로 소문난 곳을 골라서 두세 시간을 땀이 흥건하도로 걸은 후에 그 근처 맛집을 찾아 건강식을 먹고 찻집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한 주간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동호회를 만들었다.
넷 중에서는 막내인 내가 총무를 맡아서 그다음 주 걸을 장소를 섭외하고 추천을 받아서 식당과 카페를 검색하고 예약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네 명의 소규모 동호회지만 언니들은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고 때마침 걷기 모임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김수현과 김지원의 <눈물의 여왕>이 장안의 화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맨발의 여왕]은 어떤지를 물었고 모두의 만장일치로 우리 걷기 모임은 맨발의 여왕 이름을 갖게 되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의 어느 여름날 무안의 황토 연꽃길을 걸었는데, 그늘이 없어서 조금 힘들긴 했어도 발바닥이 황토로 물이 들 정도로 걷고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한진수산식당>의 사장님은 날마다 배 타고 나가서 잡아온 싱싱한 아이들로 한상을 제대로 차려내었는데 민어회와 지리는 최고의 맛이다. 10월 선선해지면 한 번 더 무안황톳길 걷고 다시 오는 걸로...
회산 백련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2층에서 바라본 연꽃 전망은 멋지더라. 수천 평의 너른 습지가 백련으로 가득한데 8월에는 만개해서 더 아름다울 듯...
지난주에는 화순 너릿재 흙길이 좋다 하여 아침 일찍 서둘러서 너릿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왕복 한 시간을 매미소리 들어가며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만끽했다. 너무 단단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적당히 부드러운 흙길은 우리 마음도 발바닥도 말랑말랑하게 해 주니 쑥 인절미를 밟는 기분이더라!
전날 미리 예약해 둔 <포르코 로쏘>에 가서 대구구이, 단호박 수프에 안심 스테이크, 해물 뚝배기 파스타까지 맛나게 먹고 능주 <장금이 떡집>에 가서 보리기정떡을 한 박스씩 사고는 수만리 가는 길에 있는 전통 찻집 <들국화>로 갔다. 들국화 사장님은 모든 차를 수제 청을 만들어 너무 달지 않게 시원한 오미자 차며 뜨끈한 쌍화차에 생강차까지 장인의 손맛을 가진 분이다. 바느질과 자수에도 능해서 손수건이며 앞치마도 만들어서 파시는데 참 착한 가격에 좋은 면 원단을 사용해서 갈 때마다 뭔가를 사들고 오게 된다.
1년 가까이 전국의 좋은 황톳길을 찾아서 걷다 보니 오랜 세월 갈라져 있던 내 발바닥은 보드랍고 촉촉해서 더 이상 풋크림이나 보습제를 바르지 않아도 된다. 흙이 주는 치유의 힘은 참 대단하다. 흙길을 걸으며 멍 때리면서 나무 향과 매미 소리를 듣다 보면 미운 사람도 없어지고 걱정거리도 사라진다!
이제 9월에 도전할 새로운 황톳길은 순창의 강천사로 정했다. 강천사 흙길을 걸으며 옆으로 흘러가는 계곡의 물소리도 듣고 흙냄새에 더 집중해 보련다. 추석이 오기 전에 지리산 와운마을 천년송을 보러 가는 길에 트래킹을 하며 여름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내고 오련다. 기다려라~ 강천사야 와운마을 천년송아! 그대들을 추앙하러 네 명의 맨발의 여왕님들 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