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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hwa Dec 25. 2024

결혼 29주년을 기념하며 1

30년 전 나의 선택에 감사한다^^

  지난주 17일 화요일은 결혼한 지 29주년 되는 날이었다. 살아오는 동안 12월은 내게 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생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고 무엇보다 첫눈이 오거나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달이니까!


  30년 전 영어학원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난 옆자리 선배랑 썸을 타는 중이었고, 그는 원어민 쌤 크리스틴과 신나게 프리토킹을 즐기는 중이었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임용고사에 합격한 나는 겨울방학 두 달을 좀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한편으로는 괜찮은 남자를 찾아보자는 흑심도 있었다.)


  옆자리 네 살 많은 선배는 나랑 대화가 잘 통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지만 수업이 끝난 후에 몇 차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동성동본에 먼 팔촌쯤 되는 그런 사이였다. 크리스틴 쌤은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쉬움을 남기고 3월에 첫 학교로 가서 중2 사춘기 걸린 아이들과 한참 씨름하던 중에 현타가 왔다.  아이들이 좋아서  

정년까지 하려고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이대로는 얼마 안 가서 나가떨어질 지경이었다.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 퇴근 후에는 근처 도서관에 가서 밤 10시까지 대학원 준비를 했다.

  운이 좋아서 대학원에 합격하고 이듬해부터 석사를 시작했고 어느 날 대학도서관에 시험준비하러 갔는데 빈자리가 없었다. 그나마 책이 조금 펼쳐진 자리에서 잠시 공부하고 있는데(메뚜기라고 부름)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자기 자리라고 비켜달라고 한다. 일어나면서 눈이 마주쳤는데 얼굴이 낯설지 않은 그런데 기억이 안 나는 거다.


  상대는 나를 기억하는 눈빛이었다.

자판기 커피 한 잔 사준다기에 나가서 들어보니 영어학원 그 남자란다. 그날부터 1년간 햇병아리 교사의 얼렁뚱땅 좌충우돌 교단일기를 다 들어주었고, 그해 일곱 번의 소개팅에도 별 진전이 없는 내 연애사를 모두 들어주었다.

  처음엔 남사친 정도로 시작해서 연애감정이 들지 않았는데, 그 사건 이후로 그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논문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찾으러 국회도서관에 다녀왔는데 모두 내 논문에 필요한 자료만 복사해 왔다. 자기 거는 왜 안 해왔냐니까 내 자료가 넘 많아서 자기 현금으로는 복사비가 부족해서 자기 건 다음에 다시 해온다고...


  나라면 내 자료를 복사하고 부탁받은 걸 못했을 텐데, 이 남자는 나랑 좀 달랐다. 연애를 하거나 썸을 타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늘 상대를 먼저 배려했다.


To be continued(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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