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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hwa Dec 25. 2024

결혼 29주년을 기념하며 2

30년 전 나의 선택에 감사한다^^

  그날부터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1년 정도 연애를 하고 나니 결혼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부모님께 인사시키려고 집으로 불러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큰딸이자 큰 손녀라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온 식구들이 다 출동했다.


  이 남자는 초면에 낯을 가리는 I형 인간이라서 그날의 식사 자리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두세 시간의 취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후에 아빠가 나를 부르셨다.

"네 딸 중에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딸이라 저 녀석에게 널 못 보내겠으니 헤어져라"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데요?"

"키만 멀대처럼 크고 비쩍 마른 데다가 술도 잘 못 먹고 기질이 활달하지도 않아서 큰 사윗감으로는 낙제야!"

"아빠 그거 말고 진짜 맘에 안 드는 다른 이유는 없어요?"

"대학원생인데 아직 취업도 못했잖아..."

  어느 것 한 가지도 아빠 맘에 안 들었던 거다.

"넌 뭣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저런 녀석과 결혼하려는 거냐?"

"이 사람은 늘 제 이야기를 경청하고 저를 배려해 줘요. 지금은 직장이 없지만 12월 결혼 전에는 취업이 될 거예요. 설사 2~3년이 걸리더라도 제가 일을 하니까 둘이 먹고살 수 있어요."


  결혼식 1주일 전에 취업이 확정되었고 30년째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물론 중간에 위기도 있었고 큰 고난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긴 시간을 함께하며 우리에겐 깊은 전우애와 뜨거운 동지애가 생겼다.


  4학년 겨울방학 때 영어학원을 가기로 선택한 나에게, 첫 교단에서 날 힘들게 했던 우리 2학년 7반 아이들에게,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한 나에게, 무엇보다 30년 전 그 남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나에게 정말 감사한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온 나는 여태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은 남편이다. 나랑 결혼해 주어 고맙고, 함께 두 아들 키우며 힘들었던 시간도 잘 지나왔고 앞으로는 동무처럼 지냅시다. 밥동무•말동무•몸동무 - 함께 밥 먹고 영화나 유튜브 보며 소소한 대화 나누고 몸건강 걱정하며 챙겨주는 그런 동무 말입니다. 사랑하오, 몹시!



그나저나 여보! 오늘저녁 메뉴는 뜨끈한 매생이 굴떡국이 좋을까요? 시원한 무 넣고 얼큰하게 끓인 동태찌개가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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