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완전히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다
저자소개 : 나림
어린시절 남들보다 가장 불행하다 생각했다. 스스로 죽음을 여러차례 시도하고, 죽을 뻔한 위기도 여러번 겪은 저자는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온갖 상처, 트라우마에 시달려 죽고 살기를 반복 한 끝에, ‘책’하나로 새로 태어나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동안의 겪은 숱한 모진 고통을 딛고 이제는 독자들의 마음에 들어가 어루만지기를 꿈꾼다. 누구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깨달음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달이 되어 살릴 수만 있다면 저자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다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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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Part. 1_ 추위에 갇힌 밤
폭설이 내리던 밤
겨울의 아이
나는 갇혔다
빵집을 지날 때마다
귤 서리
나의 산타클로스
난로 냄새
아파서 숨도 못 쉰 칼바람
눈 한송이의 모습
크리스마스 멜로디 카드
겨울 바다
내 마음이 얼어버리는 계절
나의 생일은 항상 홀로
나의 나무는 생명을 잃어 말랐다
폭력은 더 이상 뛰지 않는 벼룩을 만든다
사람, 사람, 사람
졸업식
Part. 2_ 서서히 녹는다
책이 나를 살게 했다.
뜨개질
첫 눈에 발자국 콕
동면
프레임
내 마음은 빙하기 얼음 속 어딘가에
나의 밤은 가장 길었다
반짝이는 조명을 사랑했다
겨울에는 모든게 언다 하물며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마음
크리스마스 노래와, 데시벨 공포
누군가의 아픔은 두배로 옮는다
가장 슬픈 웃음
나의 텐트
장작불
나의 사진을 잘랐다
겨울만 되면, 마음이 찝찝해
광화문의 시린 추억
손난로
이별하지만, 잠시
에필로그. 겨울END.
부추는 씨앗을 남기고 다음해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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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죽음으로부터 ‘부추꽃’처럼 찬란하게]
손목을 그었다.
나이32살에 지방 한적한 동네에 자리잡고 있던 엄마의 집으로 다시 합가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엄마의 집으로 오면 그간 지치고 너덜너덜해져버린 몸과 정신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까 하는 아주 작은 동아줄이 될까 하여.
그러나 어쩌면… 예상하기도 했다. 이 곳에 내려온다 해서 엄마로부터 위로를 받고, 다시 기운차릴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기어코 나는, 더 이상의 살아가야할 이유도, 가치도… 모두 ‘부질없다’ 여기고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고선 소리쳤다.
“이제 정말 더는 못버티겠어. 엄마. 미안하지만. 정말 살고 싶지가 않아. 아니, 그냥 정말 죽어야 이 지옥이 끝날 것만 같아. 제발 나 좀 보내줘 이제.” 그렇게 울며 칼을 집어들었어.
너무 놀라 벌벌 떨고 있는 엄마는 필사적으로 이 죽음을 막으려 했지. 더 있다가는 엄마도 정말 죽일뻔 했어. 왜냐고? 엄마는 내 트라우마가 엄마로부터 온 것이란 걸 공감도, 인정도 안했고 늘 ‘네 의지’문제라며 가르치기 바빴어.
서로 말로 싸우다 못해 결국 내 정신에 한계가 왔지. 순간의 찰나에 엄마도 죽이고, 나도 죽으려 했어. ‘아, 이래서 존속살인이 벌어지는구나.’하고 깨달았지. 정말, 당연히 나쁜 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 그 입장, 그 순간까지 가보니까 알겠더라. 사람의 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모든 끈이 탁- 끊어지는 순간.
모든 삶을 진심으로 포기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한한 지옥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버렸어. 엄마가 날 망치고 가슴에 대 못을 박았는데 그걸 엄마가 책임질 생각을 안 한다는 배반감에 늘 고통스러웠으니까.
죽음을 필사적으로 막은 엄마 덕에 내 기운은 모조리 빠져버려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렀고, 그렇게 병원으로 갔지. 그 때부터 스스로, 자발적으로 정신과를 찾아서 약을 먹기 시작했어.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 다시 자살하기 위해 자신에게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거든.
대체로 나의 죽음에 대한 갈망은 엄마와의 갈등때문인데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미칠듯한 답답함. 그저 난 위로와 깊은 사죄를 받고 싶었어. 그러나 엄마는 그런 나에게 신앙에 대한 강요만이 있었을 뿐... 당연히 대화가 될 리가 없잖아.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를 더는 멈추게 할 방법이 없었어. 그냥 차라리 본인이 약을 먹고 그래서 나라도 순한 양이 된다면. 그나마 버텨질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너무 서럽고 초라한… 차마,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속에서 그렇게 정신과 약과 함께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어.
근데 어느 여름, 약기운에 너무 어지러워서 제대로 앉아있거나 서서 걷지도 못하는데, 겨우 병원에 가기 위해 집앞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 그 미약한 정신상태에서도 내 눈에 또렷하게 들어 오는 것이 있었어.
부추꽃이었지. 여름이 되던 그 해에,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목적도, 의욕도 모두 다 놓아버린 채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을 딱 그 때에, 하얗게 피어오른 부추꽃을 바라보았어.
우리집 옥상에는 욕조를 개조해서 쓰고 있는 큰 부추화분이 있거든. 부추꽃은 정말이지 하얗고 콧대 높게 힘껏 피어오르다, 가을쯤이 되면 서서히 그 모습 그대로 말라가지. 내 눈엔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고, 찬란했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채 마른 꽃이 된 부추꽃은 내 인생보다 훌륭했어. 아니, 그 어떠한 인생보다도 멋있었지. 까만 작은 씨앗 알갱이들을 무수히 남기고 다음 해를 기약하며 다시 흙으로 돌아간 부추.
뿌려진 씨앗들이 너무도 많아서 우리집 옥상으로부터 벽 옆면에 있는 담벼락 사이로도 마구 떨어졌던거야. 그런데도 아무 손도 타지 않은 그 씨앗들은, 비좁은 담벼락 사이로도 다음 해에 아주 보란 듯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냈지.
그러다 생각이 들었어. ‘내 인생이 저 부추꽃처럼 찰나의 때만 찬란하더라도, 행복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꿋꿋이 버티며 죽음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음 해를 기약하며 다시. 또다시, 피어오른다면 지금의 내 모습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하고. 반대로는 자책도 했지.
평소에는 눈길도 안 주며 별 볼일 없다 생각했던 존재인 부추꽃이, 그 평범한 들꽃이 어찌 저리도 악착같이 생명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아무런 불만도 없이 자기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저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지.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못하고 있는지 말야. 그 느낌이 어느새 스며들어 내 마음안에 씨앗이 되어 피어버렸나봐. 부추꽃처럼.
그래서 다시 살아보기로 했어. 죽음에 대한 갈망과 지나 온 과거는 그대로 놓아주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 힘껏 피어오를 꽃을 위해 살아보기로. 그때부터 마음에 저 부추꽃처럼 살기 위해 씨앗을 가득 담아내기 시작했어. 지금, 각자의 상황들은 모두 다르지만, 죽음을 앞두고 갈망하는 많은 이들이 있을 거야 나처럼.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그래도 이면에는 작은 동아줄처럼 살고싶은 마음이 있기에 펼쳐 본 거겠지. 그런 그대들을 위해 썼어. 어떻게 죽고, 어떻게 다시 살아나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죽고싶다는 건. 더 이상 기댈 곳도, 의지할 사람도, 믿을 그 무언가도, 용기도, 앞으로 향하기 위한 목적도 목표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일거야. 그래서 반대로 죽고싶은 인생이 아니라, ‘진짜 살고싶은 인생’을 원하기에 ‘살려달라’는 의미로 죽고싶다고 외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랬으니까. 사실 죽고싶은게 아니라, 그저 지금 처한 이 끔직한 인생을 새롭게 바꿔 다시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랬던거야.
같은 바람이라면, 우리는 이제 상처를 마주해야해. 그리고 자신을 괴롭혀 온 과거를 놓아주어야 해. 과거가 날 잡은 것이 아닌 자신이 과거를 잡고 놓지 못한거니까. 막막하지? 근데 이젠 내가 있어. 난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그대는 이제 내가 있으니까 땡 잡은거야. 그러니 ‘제대로 죽는 법’을 배우고, 새 인생을 살아보러 같이 가보자.
ep.1 [ 폭설이 내리던 밤 ]
이혼 후 바로 재혼한 엄마는 지독한 우울증에 갇혀 살았어.
그런 엄마를 매일 유심히 관찰하는 게, 아니… 눈치 보는 게 일상이었다. 엄마는 늘 언제라도 저 베란다를 열고 뛰어내릴 것만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늘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어 한 사람이었기에, 항상 술은 엄마의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었어.
학교 수업이 끝나고, 길옆 유심히 지켜보던 꽃집에 들러, 꽃이 아닌 파란 이름 모를 선인장 화분을 꼬질꼬질하게 모아온 용돈을 내밀어 샀다. 꽃은 너무 쉽게 져버리고, 이토록 추운 겨울에는 당장이라도 꽃잎을 떨굴 것만 같아서 사고 싶지 않았어. 꼭 엄마의 모습 같아서.
선인장은 뭐, 물을 안 줘도 되고, 따뜻한 집안 내부에 잘 두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어. 엄마가 그렇게라도 선인장처럼 살아내길 바랐던 마음이었나 봐.
집에 들어왔는데, 집안은 어둡고 고요했어. 엄마는 왜 인지 항상 있던 거실 자리에 없었고, 썰렁한 기운만 늘씬 풍기고 있었다. 새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엄마는 도저히 그런 외롭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 종교의 힘을 빌리기 위해 산속 동네에 있는 교회에 며칠 머물다 올 것이라고 했지.
그날 밤, 폭설이 대차게 내렸고, 내 마음도 폭설로 뒤덮여 차갑게 식어 죽고 말았어.
그렇게 다정하게 친근하게 잘 따르고 좋아했던 새아빠였는데. 엄마보다 한참 연하의 이 새아빠는 나를 여자로 보았나 보다. 그때 내 나이는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 12살.
“있잖아, 너무너무 무서웠어.
새아빠라는 그 사람보다, 엄마가 그 순간 곁에 없는 사실이 더 두렵고 힘들었어.
엄마를 위해 사 왔던 화분만 그저 고요히 아무 말 없이 선반 위에 덩그러니 놓인 채, 그대로 그날 지옥에 빠지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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