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날 Sep 09. 2022

선생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동료 교사 이야기


  초, 중, 고 때 가족의 이사로 여러 번 전학을 가야 했던 나는 새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초 2 때 충청도에서 인천으로의 전학을 시작으로 해서, 나는 새 학교에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아 반장을 하기도 했고, 전학 간 학교마다 '반장 해보기'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새 친구 사귀기는 힘들다. 마지막 전학이 중 3 때였는데 인천에서 온 머리 긴 전학생을 신기해하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나는 느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친구 한 명도 못 사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전학 간 날, 나는 순둥순둥 해 보이는 아이들 무리를 찾아 다음 수업이 이동 수업 같은데 교실이 어디냐고 물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들어갈 무리를 찾아 친구를 사귀었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를 졸업했다. 스스로 ‘전학 만렙’, '적응 만렙'이라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그 당시 나는 안 괜찮으면서 괜찮은 척했단 걸 알았다.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 새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향적인 척하기에 최선을 다했다.








  A는 4년 전, 첫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이다. 첫 해에는 같은 부서원으로, 마지막 해에는 부장님으로 만났다. 차가운 첫인상에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모범생도 말썽쟁이도 어딘가 독특한 아이도 A에게만 오면 자기 이야기를 술술 하는 게 신규 교사는 신기했다. A는 별다른 조언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A와 친해졌고 어느덧 아이들처럼, A를 찾아가 신나게 내 이야기를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B는 1년 전,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이다. 동학년 담임을 맡은 우리는 학기 시작 전, 반을 뽑았다. 반 아이들 명단이 적힌 종이가 안 보이게 접혀있고, 손 가는 대로 뽑으면 적혀있는 아이들은 우리 반이 되는 것이다. 첫 학교에서 나는 모두가 인정하는 '똥 손'이었다. 오죽했으면 뽑지 말고 남는 거 가져가 보라고 할 정도였다. 내가 뽑은 반엔 해마다 그 학년에서 손 많이 간다고 이야기되는, 선생님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인물들이 속해있곤 했다. 애들이 '똥'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손 많이 가는 반이 있는가 하면 손 안 가는 반도 있기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쉬운 일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쉬운 일을 놔두고 쉽지 않은 일을 직접 뽑은 내 손이 '똥'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두 번째 학교에서 나는 사상 처음으로 '금손'이 되어 알아서 잘하는 반을 맡았다. '똥 손'에서 '금손'으로 탈피한 내 자리는 B가 대체했다. 그 해 B의 반은 내가 봐도. 옆자리 선생님이 봐도. 부장님이 봐도. 정말 어려운 반이었다. 나는 B와 1년 간 퇴근길을 함께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B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A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각자의 학교 이야기를 했고 나는 A에게 올해 똥 손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나랑 친한 B가 똥 손이라고 말했다. A가 말했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 가는 것 같아요.' 나는 깊이 공감했다. 그 해 나는 아이들을 상대할 에너지가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학교를 옮겼고 그런 나에게 알아서 잘하는 아이들이 배정되었구나 싶었다. A의 말은 그간 똥 손으로 고생했던 나에 대한 위로이면서 현재 똥 손으로 고생하고 있는 B에게 내가 마음으로 보내는 위로이기도 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학교에 좋은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달라졌나 보다. 동학년은 아니지만 교직 경력이 같아 공감대가 있는, 만나면 인사 나누는 정도인 C를 복도에서 만났다. 그 반 수업을 들어가며 '담임 선생님 참 힘들겠다'란 생각을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겠다 싶었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 가는 것 같아요.’라는 A의 말이 떠올랐다. 나에겐 이 말이 큰 위로였지만... 어쭙잖은 위로보단 C의 말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것이 최선의 위로라 생각해, A의 말을 옮기진 않았다. 그날 하루, 고생하는 C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직 어색하지만 마음 나눌 친구가 한 명 생겼다.


  2학기부터 우리 반은, 하루에 한 명씩 아침 조회 때 돌아가면서 인사를 한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하는 아이도 있고 "차렷! 인사!" 하는 아이도 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애들이라 작정하고 드러낼 기회를 주려고 시작했는데 이젠 인사 뒤에 내가 조금씩 말을 붙인다. "얘들아. 티가 잘 안 나서 모르겠지만 1번은 우리 반에서 진짜 중요한 일을 해주고 있어~" 아이들이 궁금해서 "뭐요? 뭐요?" 한다. "고장 난 걸 자꾸 고쳐줘. 저기 저 창문. 1학기 내내 잠금장치가 안 내려가서 고장 난 줄 알았거든? 근데 이번 주에 태풍이 와서 창문을 꼭 잠가야 했잖아. 1번이 방과 후에 남아서 고쳐줬어." 전체적인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그러나 내 말이 하나의 다리가 되어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안물안궁인 딴소리를 한다.








  학교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지난 1학기. 작년에 함께했던 좋은 동료들이 여러 이유로 내 곁은 떠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떠난 자리는 새로운 선생님들로 채워졌지만, 날씨 이야기를 하고 함께 산책할 선생님은 있으면서도 나의 가장 약한 부분과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는 없었다. 학교를 직장으로 다니는 선생님도 친구가 필요한데 하물며 아이들은 얼마나 친구가 필요할까 싶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형성된 또래 집단 속에 새 친구가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친구 관계는 담임으로서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아이의 좋은 면을 티 나지 않게 슬쩍슬쩍 반 아이들에게 흘려 이야기하는 것. 설령 지금 친구가 없더라도 자신감 갖도록 칭찬해주는 것. 친구 사귀기가 어려웠던 나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 쓰다 보니 서로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언젠가 아이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친구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말들을 다 해준다.


  확실히 교직은 적성에 안 맞는다. 수업 준비도 어렵고 학생들 싸우는 것 지도하는 것도 머리 아프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아이들은 모른다. 내가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라는 걸. 조용하고 싶은 사람이 조용할 수 없는 아이들과 있으며 엄청난 양의 말을 해야 하니... 집에 오면 말을 거는 동생에게 ‘누나가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했어.ㅜㅜ.’라며 대화를 단절시킬 때가 많다. 이렇게 적성에 안 맞는 일이지만 그래도 학교에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이 있다. 그래서 남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친구가 없는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그저 있어주는 것.


  그리고 얘들아. 사실은 남아있는 선생님에게도 좋은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





 

작가의 이전글 사회 선생님이 역사 가르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