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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Sep 06. 2022

사회 선생님이 역사 가르칠 때

하소연

  사회 교사로서 했던 일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역사 수업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다른 일들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내게 있어 역사 수업은 어려운 일이다.


  중등 교원 임용 시험에서는 교사를 선발할 때 '일반 사회', '지리', '역사'. 이 세 과목의 교사를 모두 따로 뽑는다. 각 과목에 배정된 합격 인원이 다르고 시험지도 다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일반 사회(또는 지리) 교사가 역사 수업을 맡는 경우가 꽤 있다. 역사 교사가 사회 수업을 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중학교에 일반 사회를 전공한 교사 1명, 지리를 전공한 교사가 1명, 역사를 전공한 교사가 1명씩 있다고 하자. 학년 당 학급 수가 모두 동일하다면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한 주동안 이루어져야 하는 사회 수업의 총 시간과 역사 수업의 총시간이 같기에, 일반 사회 교사(또는 지리 교사)가 역사 수업을 일부 맡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일반 사회로 임용 시험에 합격한 교사가 신규 발령 난 학교에서 역사 수업만 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학교 규모가 작을수록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것 같다. 사회와 역사가 같은 교과군이라 가능하다고 하는데, 원칙적으로 가능하다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참 어렵고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 수업을 큰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는 사회 선생님이 계실 것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역사 과목을 어려워하는 교사라면 역사 수업을 맡는 것은 교직 생활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요소이다. 2년 동안 역사 수업을 하다 2년 반 넘게 역사 수업을 하지 않고 있는 나는, 역사 수업을 맡지 않는 것이 그 해 내게 찾아오는 큰 '행운'으로 느껴진다. 나는 역사 '학습'에 소질이 없어 역사 '수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회 교사인데 체제는 나에게 역사 수업의 임무를 부여한다.


  역사 시간에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정말' 슬프고 서럽다. 24살, 교직 생활 첫 해에는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지금보다 훨씬 서툴렀다. 그런데 내가 전공한 사회 시간에 애들이 떠들 때와 전공하지 않은 역사 시간에 애들이 떠들 때 다가오는 바가 좀 다르다. 전자는 자신 있게 아이들에게 할 말을 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데 후자는 '내가 수업을 잘 못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는 시간 들여 ebs 강의도 듣고 열심히 수업 준비했는데...', '나도 이거 하기 싫은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서럽기까지 하다.


  자취했을 때, 퇴근 후 집에서 졸다가 저녁도 안 먹고 불을 켠 채로 잠든 적이 좀 있었다. 밤중에 깨서 씻고 다시 푹 잘 수 없는 날들이 있었는데 주로 역사 수업 준비를 해야 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교사가 역사 '수업'을 준비한다기 보단 학생이 역사 '공부'를 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내용을 모르니 ebs 강의를 듣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쉬는 시간과 공강 시간에 ebs 강의를 틈틈이 들었고 밤늦게 노트북과 자습서를 들고 카페에 간 적도 많았다. 사비로 숨마쿰라우데라는 두꺼운 자습서 등 역사책을 사모았다.


  최고로 슬픈 기억은 역사 시간에 말썽쟁이가 수업 듣기를 너무 싫어한 날, 나와 갈등을 빚다 눈물이 난 일이다. 눈물이 고여 참다 수업 끝날 즈음에 말썽쟁이를 불러 복도에서 말하는 중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그 반에는 말썽쟁이도 있었지만 부족한 나의 역사 수업을 늘 빛나는 눈으로 들어주는 예쁜이들도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 영어 시간에 '선생님께 편지 쓰기' 활동을 한 결과물을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았었다. 편지 내용에 작년 역사 수업 때 내가 울어서 슬펐고 자신이 친구들을 조용히 시켰어야 했는데 죄송하단 부분이 있었다. 그 아이가 나에게 죄송함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마음이 정말 예쁜 아이였다. 지금도 힘이 들 때면 이 편지 내용이 힘이 된다.

  편지 사진을 받고 한동안은, 학생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게 창피해, 내가 울었다는 내용이 쓰여있는 부분을 자른 사진으로 편집해 사진첩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 그토록 싫어했던 역사 수업을 1년간 책임감 있게 끝마친 것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기억나는 '찬드라 굽타'. 세계사 파트의 그 생소한 이름들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내가 대견하다.


  사회 교사가 역사 수업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다. 역사 수업을 안 할 수 있는 학교로 이동하는 것. 그런데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학교 사정을 미리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같은 학교라 하더라도 해마다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역사와 사회 모두를 전공한 선생님이 나타나 구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들은 언젠간 역사 수업을 할 가능성, 위험 요소가 잔존하는 불안한 방법들일뿐이다. 내 경우에도 이번 학기에 갑작스럽게 역사 수업을 맡을 뻔했는데 역사와 사회 모두를 전공한 선생님이 나를 구해주셨다. 작은 시골 학교에서는 사회 교사가 역사 수업을 하는 것보다 더 심한 상황도 있을 거라고 예상된다. 아무튼 사회 교사가 역사 수업을 하는 일을 포함해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과목의 수업을 힘겹게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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