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날 Sep 03. 2022

반가운 손님

오늘 밤 주인공은

※솜이는 가명입니다.


솜이는 내가 5년 동안 담임으로 만난 학생 중 말수가 가장 적었다. 일상에 마스크라는 번거로움을 가져온 코로나는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기 어렵게 만들었다. 말수가 적은 아이라면 더욱 친구 사귀기가 어려워졌다. 솜이는 학교에선 아무와도 말을 안 하는 듯했다.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정도.


첫째. 착하면서도 솜이가 불편해하지 않을 것 같은 반 아이에게 솜이를 챙겨줄 것을 부탁한다. 둘째. 나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마디 이상 솜이에게 말을 걸어, 한마디도 안 하고 하교하는 일이 없게 한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부모님에게 내가 관찰한 아이의 모습을 알리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상의한다. 보통 첫 번째 방법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은데 그 해 내가 찾은 도우미 학생은 정말로 훌륭한 학생이었다.


어색하지 않게 솜이를 살뜰히 챙기는 도우미 학생을 보며 담임교사도 분발한다. 솜이와 상담 또는 대화하는 건 쉽진 않다. 대화 지분이 솜이 3 나 97 정도. 문장의 길이를 cm로 비유하자면 솜이 0.5cm 나 5cm. 그래서 솜이와 이야기를 마치면 나는 ‘내가 말이 너무 많아 솜이가 불편했으면 어쩌지’ 걱정하기도 한다. 솜이와 대화하며 나는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기다리면 솜이의 대답이 돌아온다.


솜이가 불편해할 것 같은 단체 활동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솜이는 결석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솜이는 혼자 하는 활동은 잘할 수 있었고 지각을 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근무지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긴 뒤라서였을까. 그 해 스승의 날에는 처음으로 찾아오는 졸업생이 없었다. 조금 허전했다. 별일 없이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간 솜이가 교무실로 찾아와 편지를 건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손님에 솜이 앞에서 처음으로 말을 어버버 했다. 솜이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자기 얘기를 들려주었다.


답장을 할까 고민했지만 오바인 것 같아. 바빠서. 좀 게을러서.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어느 날 퇴근 무렵 화장실에 갔다 교무실로 가는데 문 앞 복도에 솜이가 보였다. 올해 나는 솜이를 가르치지 않아 과목 선생님을 찾아왔나 싶었다. “어느 선생님 만나러 왔어?" 솜이는 말없이 가방을 뒤적였다. 기다림 시작. 생각보다 한참 기다려야 한다. '나한테 뭔가 줄게 있는 것 같은데...' 아니라면 솜이가 민망할 테니 속으로만 생각한다.


비타500 한 병이 나왔다. 뻥 아니고 요새 맥아리가 없어 비타민 약 챙겨 먹어야 되나 했는데. 반가운 손님이 반가운 비타500을 가져왔다. 한 때 우리 반이었던 학생이 이제 담임이 아닌 나를 찾아오는 건 기쁜 일이다. 더구나 솜이는 항상 내가 다가가야 했던 학생이기에 올해 두 번이나 나를 먼저 찾아와 주었단 사실이 감격스럽고 내게 교사로서의 효능감(?)을 준다.


그날 나는 솜이를 교문까지 바래다주며 근황 토크를 했다. 그리고 스승의 날 솜이가 준 편지에 대한 뒤늦은 답장을 했다. 솜이가 자기 얘기를 해준 것처럼 나도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해줬다. "선생님 사실 지난 학기에 힘들었었어. 힘들 때는 학생들 대하는 것도 힘든데 스승의 날에 네 편지 받고 기뻤어"


주말 오전. 집 앞 카페에서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읽는 중이라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책 뒷 표지에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솜이가 생각났다. 내가 만났던 여러 가지 이유로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들도 생각났다. 모두 교실이 무대라면 주인공이긴 힘든 학생들이다. 그리고 존재를 포용하는 좋은 친구가 얼른 나타나 주목받았으면 좋겠는 학생들.


다음에 솜이가 찾아온다면, 교실에서 주인공이기 힘들었던 학생이 나를 찾아온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선생님 교직 생활에서 주인공은 너다." "네가 찾아와서 오늘 쌤이 기쁘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너!"


작가의 이전글 실수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